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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Oct 06. 2022

한글떼기 프로젝트 2

약은 약사에게 한글교육은 한글 선생님에게

나의 무기력과 게으름 덕택에 놓칠뻔한 한국어 교육의 막차를 겨우 잡아 탔다. 하지만 우리가 올라탄 기차가 선로에서 서서 기약 없이 정차 중이다. 행동력은 떨어지고 마음만 다급한 팔랑귀, 호롱불, 갈대 엄마는 불안하다.


한국 아이들에게 영어가 외국어인 것처럼 내 아이들에겐 한국어가 외국어이다. 아이에게 무엇부터 시켜야 하는지? 엄마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와 정보, 엄마들의 글들을 읽고 또 읽는다. 구구절절하고 논리 정연한 글들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만 나온다. 외국어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좋고 시기를 놓치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보가 많다. 그리고 어떤 분야의 교육이던 육아방식이던 제일 중요한 건 주양육자인 엄마의 주관이라고 한다. 주양육자인 남편의 부재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주양육자 의무 대행을 맡게 되었으므로 나와 주관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다.


나는 세상사에 별 의문을 갖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편이다. 친정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고 다수를 위해 내 개인의 욕구는 억압하고 사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성장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언제였던가? 내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갈등을 두려워하고 싸움을 비겁하게 피하는 성격이란 것을 깨닫고  후부터는 주로 안전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래도  저래도 흥인 나는 어릴 적부터 주관이 없었다. 나는야! 남들과는 다른 종류의 흥부자! ! ! 주관 없는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 박제가   박물관에 전시되어도 손색이 없다. 내게 주관이란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입을 생각으로 구입해서   번도 입어 본적 없이 옷장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버려지는 옷과 같다. 그렇다. 나는 주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살면서 주관을 가져보자 마음을 먹어본 적도 실제로 사용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내게 주관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내가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체내에   방울도 없는 주관을 생성시켜 짜고 짜내어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에 써먹어야  궁지에 몰렸다.


 새끼를 위한 외국어 교육 주관을 어렵게 마련하자마자 또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들과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하여 아이 한글떼기 솔직 후기들을 수집한다.


"책을 읽어주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아이가 한글떼기에 성공했어."


"EBS한글 방송과 교재는 대한민국 엄마들 한글떼기 바이블이야! 그거 하면 한글떼기 다한다 다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줘야 한단 말인가? 이 몸은 비록 소리 내서 책 읽어주기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첫째가 성공하면 그 후에 둘째의 한글떼기 여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책 읽어서 한글떼기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시작한다.


"하루에 평균  권을 읽어주면 되는 거야? 대략이라도 말해봐!"


"많이 읽어줄 수 있으면 좋지. 힘들어서 다 읽어줄 수는 없으니까 세이펜을 이용해서 아이가 혼자 책을 읽도록 해주면 좋아"


세이펜? 대한민국 엄마들이   사용하고 나면  번만 사용한  없다는 책을 읽어주는 기적의 펜이란다. 나는  적도 없는 세이펜은  페이지마다 펜으로 누르면 엄마 아빠를 대신하여 책을 읽어준다고 한다.  요망한 세이펜을 당장 하나 마련하고 싶다. 하지만 세이펜과 관련된 다운로드  테크놀로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멈칫하게 된다. 얼마  친정엄마의 스마트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연결하여 유튜브를 보는 것을 실행하는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었다.  과정 중에 다행히 미치진 않았지만 여러  팔짝 뛰었다. 나는 문명과 문맹  사이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으므로 세이펜의 도움은 빠르게 단념한다.


대신에 아이들에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하루에  권씩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EBS에서 하는 한글을  떼준다는 대단한 방송을 반복해서 시청하고 첫째와는 엄마표 한글교실을 열어 한글교재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교제에 집중하지 못했으며 한글 공부에 관심이 없다. 나는 아이와 한글 공부를 하다가 자주 싸운다. 우리의 한글 푸닥거리가 시작될 때마다 엄마와 형의 싸움 구경하며 둘째는 뒤에서 교육방송에서 배운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모음 노래를 부른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싸움구경에 추임새를 넣듯이 말이다. 아이가 둘이면 첫째와 달리 둘째는 그렇게  뒤로 한글을 배워 뗀다고 하던데...  그런 둘째  한글떼기 미담이 존재하는지  것만 같다. 아이들은  용하다는 EBS 한글 교육 프로그램에서 모음 노래만 간신히 전수받았다. 엄마표 한글교실의 횟수와 늘어날수록 첫째의 한글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왜 한글을 배워야 해!"


첫째에게 내가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날을 기점으로 아이는 자주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다.


"엄마! 나 한국에 어학연수를 왔으니 한글은 꼭 배우고 호주로 돌아갈래!"는 말을 아이에게 들을 수 없으니


"한국까지 왔으니 한글은 꼭 떼고 호주로 돌아가야지! "라고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외국어 공부는 다른 공부와는 다르기 때문에 강요나 강제가 되면 거대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엄마는 강요와 강제로 엄마표 한글교실을 진행한다. 엄마의 불안과 다급함을 밑거름을 삼아 가르쳤으니 아이는 분노와 울음으로 한글을 배운다. 하루아침에 한국에 와서 한국 친구들과 한글로 수업하는 교실 안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아이는 한글이 싫다. 갑자기 변한 모든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였을 텐데. 설상가상으로 평소에 학교 공부나 놀이에 참여하지 않던 엄마가 갑자기 한글 훈장이 되어 아이를 마구 다그쳤으니 한글 공부가 잘 될 일이 없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못하면 짜증 나고 잘하면 신나고 재미있다. 익숙하지 않은 글자들을 배우니까 하기 싫고, 안 되는 걸 하려니까 화가 나고 힘들었을 뿐일 텐데 나는 아이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못했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화가 많은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를...


절반은 한국인인 내 아이들이 꼭 한국어와 한글을 알기 바라곤 했다.  왜였을까? 내 마음에게 물어본다. 내가 쓰는 말과 글을 아이도 함께 쓰며 모자 관계를 단단하고 싶었던 이방인 엄마의 이기심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그 밑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읽고 싶은 것만 읽어 기억 속에 저장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 중에  끼여있어야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류의 편안함을 느끼면  된다.  새끼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객관적으로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어린이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와 엄마들의 경험 등등 수많은 정보들을 다시 찾아본다. 결과에 대한 정보보다는 과정에 대한 정보들을  자세히 읽고 마음에 저장한다. 국제결혼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살면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 사례를 중심으로 찾아본다. 다급한 마음에 맞지 않는 구멍에 구겨 넣어 간신히 채운 단추들을 죄다 풀었다. 마음을  잡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한국의 대중문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교육적인 이유는 전혀 아니지만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혼자였던 길었던 외국 생활의 자장가가 되어주었던 텔레비전 소리가 듣기 싫어져서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집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영상을 접할 기회가 자주 없었고, 알고 있는 한국 콘텐츠는 어린이집에서 만난 상어 가족이 다였다. 외할머니의 집에는 스마트 텔레비전까지 있으니 유튜브까지 동원하였다. 영화, 음악, 드라마 등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에 아이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은 한국 대중음악! 지구촌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던 싸이 아저씨의 활약으로 아이들은 어느새 한국어로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말 춤을 춘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나는 어떤 엄마인지, 나의 성향과 아이들의 성향을 냉정히 짚어본다. 나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하나도 간신히 배우는 첫째에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한글에 별 관심이 없어하는 아이에게 가르침이 아닌 잔소리를 했다. 첫째는 세상일에 의문이 많다. 순한 기질의 아이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고 관계에서 상위에 있어야 안정감을 얻는다.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으면 돌변하여 청개구리가 된다. 아이의 세상에서는 엄마는 엄마이어야만 하고 선생님이 될 수 없다.


아이를 직접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결정이었다. 안 되는 걸 하니까 속상하고 힘들었던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한글 훈장질을 시작하자마자 아이와의 힘겨루기에 점점 지쳐갔다. 나는 내 아이를 지혜롭게 가르치는 데에 소질이 없는 엄마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선생님의 서열에 있는 사람만이 가르칠 수 있는 아이이다. 그리하여 엄마표 한글 교실은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전문가의 이야기나 주변에서 미리 체험한 인생 선배들의 의견들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이의 성향을 정확히 판단한 후, 그 길이 아니라면 유익한 정보들과 조언들도 싹둑 잘라내야 할 때도 있다.


그 후, 일주일에 세 번씩 아이는 한글 공부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한글 공부 숙제를 했는지만 확인만 했을 뿐 숙제를 하는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에 아이는 어려운 받침까지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끔은 상황과 장소,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화된 노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나는 아이가 한글을 얼마큼 알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정확하게는 아이 한글 공부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그리고 아이의 성향에 맞추어 공들인 나의 입에 지퍼 달기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드니에서의 한글학교, 한국 초등학교 국어 수업, EBS 한글 방송을 시청하며 모은 자음과 모음을 번데기 속에 가득 넣은 아이는 허물을 벗고 한글 공부방 선생님이 달아준 날개에 한글을 달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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