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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Oct 04. 2022

한글떼기 프로젝트 1

엄마 나름대로의 노력 편

" 넌 대체 지 이름도 어떻게 쓰는지도 안 가르쳐 줬냐? “


친정엄마가 나를 보고 눈을 흘긴다. 친정엄마는 나의 육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로 공식 선언했지만 가끔씩 육아 훈장으로 대변신한다. 나의 이야기 속에 감초 역할로 등장하고 싶은 야심 때문이라면 대성공! 감초역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내가 엄마 앞에서 짝짝꿍 하고 그녀의 말이 틀렸다며 머리를 도리도리   없는 분명한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야기하듯이 너무나 객관적으로 


"애들한테 뭐 가르칠 때 원래 관심 있는 거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노아야 니 이름은 이렇게 쓰는 거야. 엄마 이름은 이렇게... 그리고 길을 다닐 때 간판이나 표지판을 보고 가르쳐 주는 거야. 언어는 생활에서 배우는 거야 "


육아 훈장의 눈흘김을 계속되었고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 때문에 나의 몸뚱이는 완전히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레이저를 차단하고 무시하자 친정엄마표 잔소리가 시작된다. 1절만 하면 좋은데 2절, 3절, 4절, 도돌이표가 끝없이 계속되자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연마했던 영혼 육체이탈을 감행한다.


엄마 말이 맞다. 큰 애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아직도 한글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제대로 *짜잔한 년인 내가 아이의 한글 교육을 위해 했던 노력들은 엄마인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아이가 알아서 해내기를 무턱대고 바라는 일이었다. 아이 한글 교육이던 육아이던 내가 주체가 되어서 애를 태워본 적이 없으니 아이 이름과 엄마 이름을 한글로 쓰기를 가르쳐 주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다. 그래도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했던 소소한 노력들도 모두 다 아무것도 아닌 먼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아이의 한글교육을 위해 나 나름대로 했던 노력이란 대체적으로 이런 것들이다.  


1. 돈을 지불하고 아이를 한글학교에 보냈다.


큰 아이가 6살 때이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길었던 웨이팅 리스트에 있었던 한글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카톡"

"오말리 노아 어린이 이번 학기부터 XX 한글학교에 자리가 났습니다. "


아이는 토요일마다 90분씩 4개월 동안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한국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 다녔다. 나는 주말에 밥벌이를 하러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한글학교 출퇴근은 남편이 맡았다. 프린트물로 진행되는 한글학교에 다녀오면, 그 신성한 한글 프린트 물은 자주 종이비행기로 변해 집안을 날아다니다 쓰레기통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퇴근한 엄마와 함께 한글학교에서 배운 한글을 복습하면 좋았을 텐데... 저녁 8시쯤 퇴근하면 난 푹 삭아버린 파김치가 되어버리고, 아이들 뒤치닥 거리를 하다 지쳐 주저앉으면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깨끗이 해주기 등은 정말 잘했으나 아이들과 잘 놀아 주지 못했으며 소통하는 데에 서툴렀다. 그리고 지금 구차하게 변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기 합리화와 변명, 그리고 쉽게 포기하기는 적당히 살며 삶의 만족감을 유지하는 나만의 비밀병기 3종 세트이다.


2. 한글교육까지 본인이 총지휘하고 싶은 외국인 아빠의 육아에 의지했다.


외국인 아빠는 한국인 아내를 둔 이유로 서당개 생활 결혼생활이 3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한국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는 육감을 마련했다. 한국말은 못 하지만 한글을 쓰고 읽을 줄 안다. 혀의 모양에 따라 한글을 만들어낸 세종대왕을 존경한다고 자주 떠들고 다닌다. 심지어 아이의 한글 교육에도 깊이 관여하고 싶은 외국인 아빠는 한글 수업 참관까지 감행했다. 그는 아이가 다녔던 한글학교는 선생님에게 한국말 듣는 공부엔 많은 도움이 되지만, 한 반에 선생님의 숫자에 비례하여 학생 숫자가 많기 때문에 세세한 보살핌이 필요하고 한글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우리의 아이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분석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외국인 아빠 본인이 아이와 곧 한글 공부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아이가 한글을 떼려면 한국인 엄마가 주체가 되어 한글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한글로 된 책을 아이에게 끊임없이 읽어주어야 한다고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맞는 말이다.


3. 한글 책 읽어주기.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리 내어 읽는 책 읽기 활동에 일종의 멀미 증상이 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지목하에 소리 내어 책 읽기를 시작하면 갑작스럽게 진땀이 나서 한글들이 뒤죽박죽 되기 시작한다. 그런 이유로 내게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일은 꽤 괴로운 활동이다. 하지만 신비한 모성애의 힘으로 아이에게 하루에 한국 책 한 권 읽어주기를 작심했다. 허나 작심 3일을 여러 회 진행했음에도 엄마표 한글책 읽어 주기는 채 2주를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한국인 엄마는 무엇이든 진득하게 지속하는 활동에 어려움이 있고, 외국인 아빠는 뱉은 말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세월이 네월이 되는 시간이 걸린다는 애로사항이 있다. 아직도 외국인 아빠표 한글교실은 준비 중이며 언제 시작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작심의 여왕과 느림의 황제, 이 환상의 커플은 아이의 한글떼기에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4. 한국에 온 뒤로는 학교에서 한글을 깨쳐 주리라 믿었다.


"4월에 등교할 수 있을 텐데 아이가 한글을 떼지 못했어요. 입학보다 한 달 정도 늦어질 텐데 괜찮을까요?


한국에 도착하기 직전에 교무 주임님과 통화를 했다.


"고학년이면 한국어 능력에 따라 학교 진도 부분에서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을 수도 있지만 1학년이라서 괜찮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아이를 학교를 보내기 전날 담임  선생님과 의사소통을 할 때에도


"저희 반에 한글 아직 못 뗀 아이들 몇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도우미 선생님 옆에 노아 자리를 배정해서 특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하지만 초등학교에 등교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이는 여전히 한글을 떼지 못했다. 학교 생활은 재밌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걸까? 그 점이 이상하고 수상하다.  


"엄마랑 한글 교재 사서 집에서 한글 공부해볼까? "


"학교에서 하는 걸로 충분해.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내가 한글 다 배울 수 있어. "


하지만 아이들의 한국어와 한글 때문에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엄마의 마음은 다급해진다. 파면 팔 수록 더 파야하는 우물물처럼 끝없이 깊어지는 고민과 생각들 때문에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친구에게 SOS를 보내본다. 친구의 아이 둘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데도 이미 한글과 영어책을 줄줄 읽는다. 학원이나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다. 친구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그녀는 직장생활도 완벽히 해내고 살림도 남편과 합리적으로 나누어하며, 퇴근 후에 주어진 작은 시간들을 쪼개어서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다.


 "아이가 아직 어리잖아.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보다, 아이가 학습을 잘하느냐 보다, 엄마인 네가 아이의 성향이나 학습 능력은 물론 아이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해."


나의 또 다른 이름은 팔랑귀이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초롱불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갈대 엄마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모음과 자음도 정확히 모르는 내 아이를 보자 가슴속에 강력한 터보 엔진이 자동 장착된다. 담임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공유되고 카톡이 바로 연결되는 대한민국에 한국어 어학연수를 온 팔랑귀, 초롱불, 갈대 엄마는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건다.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바로 강력한 터보 엔진의 힘으로 급 발진을 시도한다.


"안녕하세요. 노아 엄마입니다.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아직 한글을 띄지 못했는데 학교 진도는 잘 따라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노아는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한글 공부가 충분하다고 하는데 집에서 제가 좀 도움을 주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머님... 한글은... 어머니가... 집에서 도움을... 많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짜잔한- 형용사 '못나다"의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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