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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Sep 08. 2022

급식의 왕국

빨간 맛

우리 집에 사는 첫째는 참 이상한 한국 초등학생이다. 아이는 정체불명의 이북 악센트의 한국말을 한다. 한글은 아직 깨치지 못했다.'하루아침에 다른 문화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아이가 잔뜩 위축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아이는 전학 첫날부터 씩씩하게 학교에 잘 다닌다.  그 점이 꽤나 수상하고 이상하다.


XX초등학교 1학년 1반 28번은 호주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학교 급식에 소소한 행복감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학교 가정 통신문인 E 알리미에서 공유하는 급식 메뉴를 확인한다.  참 이상한 초등학생인 첫째는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만 같다.


 “ 오늘 학교 어땠어? 숙제는 없어? 오늘 뭐 배웠어? "


물으면 아이는 오늘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나도 급식을 좋아했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에는 도시락을 쌌지만 2년이나 다녔던 요셉 유치원 급식이 너무 맛있어서 두 번씩 먹은 적도 많다. 1985년과 1986년에 다녔던 유치원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급식 때문인 것 같다. 주황색의 플라스틱 급식판과 그 반찬 냄새가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오랜 습관인 콧구멍을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급식을 좋아했던 엄마의 아들이니 내 아이가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에 가는 이상한 초등학생인 것은 당연하다. 조리사님께 먹고 싶은 반찬을  말하면 식판 위에 올려주는 급식 시스템은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이상한 초등학생에겐 할리우드 무비보다 흥미진진하다.


" 오늘 밥이 맛있었어.”


구하기도 쉽지 않고 다듬기 귀찮아서 내가 자주 해 주지 않는 반찬인 콩나물이나 시금치 같은 나물 종류를 급식을 하면서 확실히 아이가 자주 먹는다. 견과류를 잔뜩 넣고 볶은 멸치조림 등 평소에 잘 먹지 않던 반찬들 마저 잘 먹고 있다. 심지어 맛있다고 말한다.


많은 한국 음식들의 첫인상이 꽤 무섭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외국인들에게 꽤 여러 번 들었다. 특히 빨간색을 띤 음식들. 내가 편애하여 좋아하는 뼈다귀 해장국을 외국인들에게 추천해주면...  오지게 솔직한 몇몇은  


“지금 나한테 이런 개 뼈다귀를 먹으라는 거야?”


라는 강렬한 첫인상 리뷰를 들려준다. 물론 일단 맛을 보면 대부분은 맛있는 개뼈다귀의 예찬론자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말이다. 해보지 않으면 경험으로 남지 않는 것처럼, 먹어보지 않으면  맛을   없다. 이상한 초등학생은 편식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기준에서는 무섭게 생긴 새로운 한국 음식들을 먹는 것을 거부감 없이 시도한다. 맛있는 개뼈다귀인 뼈다귀 해장국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음식이기도 하다. 교시간에 학교 앞에서 만난 아이에 티셔츠엔 빨간색 반찬 국물이 튀겨져 있다. 오늘도 빨간색 한국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나 보다.


"나 오늘 비빔밥 먹었어. 엄마 왜 비빔밥 안 해 줬어?  "


미처 깨닫지 못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비빔밥을 단 한 번도 만들어 준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비빔밥이 맛있다고 했다. 앞으로는 기내식으로 키즈밀이 아닌 비빔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돋는다. 내 자식이지만 반은 외국인인 아이와 나 사이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교집합을 하나 더 마련한 느낌이랄까?  비빔밥으로 말이다. 꽤 한국적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버버 한 한국말을 하고 한국말은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둘째가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사랑스러운 환대와 함께 엉겁결에 그리고 허무하게도 월요일 첫날 어린이집 등원에 성공했다. 안 간다고 드러누울까 봐 엄청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마나 엄마와 아빠는 오늘 누워서 떡을 먹었다. 하지만 역시 우리 집에 사는 둘째는 반전 만들기에 강하다. 다음날부터


 “어린이집 안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들어 눕고 버팅기다 아빠에게 강제로 업혀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둘째는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 동안 동안 최선을 다해 반항했다. 그러다 4일째인 목요일부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앞장서서 어린이집에 간다.


"나 어린이집 가고 싶은데...”


둘째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본인의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기차의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성대의 역량으로 소리를 지르고 울어재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알님이 먹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대한 포기를 빛의 속도로 진행한다.


"아니면 말고? 혹은 밀당의 진정한 전문가?"


이틀 동안 들어 누워 어린이 심성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던 아이가 씩 웃으며 어린이집에 간다. 진심 부럽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지만 무엇이 되었던 결정 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 인생! 정말 이 아이처럼 살고 싶다. 단순하고 뒤끝 없이 그리고 화끈하게 말이다. 나는 자주 내가 키우는 아이들에게 솔직하고 후회없이 행복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배운다. 기특하다. 이제 둘째님 그러니까 이 아이는 한국의 어린이집 생활을 즐기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째에겐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었다.


첫째와 달리 둘째는 한국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춧가루가 단 한 톨만 들어간 음식을 먹어도 메워서 얼굴이 빨개진다.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을 시도하는 것을 항상 거부한다. 김치는 물론 대부분의 한국 음식을 먹지 않아서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부터 급식 때문에 내심 고민이 많았다.


"선생님! 제가 도시락을 싸서 보내면 안 될까요?"


"친구들과 함께 먹으면 먹을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좀 재미난 구석이 있어요. 어머니. 우선은 어린이집 급식을 함께 먹는 것으로 해봐요. “


“카톡”


"어머님~~ 로이 김치도 다 먹었어요.”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아이는 어린이집 급식을 주야장천 엄청나게 잘 먹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어하는 내게 선생님이 내 새끼가 얼마나 어린이집에서 잘 드시고 있는지 초고속 스피드로 “카톡” “카톡” 거리며 자주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이가 식판의 모서리의 각을 이용하여 국의 국물을 들이키고 있는 인증 사진을 사진을 받았을 땐 이 모든 물증은 사기이거나 아니면 내가 아이에게 완벽히 속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둘째에게 한국 음식을 저렇게까지 맛있고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있다니...


하지만 둘째는 어린이집 문 밖을 나서면 다른 식성을 가진 생명체로 신분 세탁을 한 뒤 집에 돌아온다. 절대로 밥 한 술도 뜨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먹을래 안 먹을래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큰 아이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절대로 그 누구도 들으면 안 되는 비밀처럼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말이다.


"로이가 한국음식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만드는 음식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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