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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Apr 11. 2024

매운 김치가 싫어요.

나는 김치 없으면 허전하다.

대문 그림은 글 내용과 반대되는 체육활동 후 급하게 배고픔을 달래는 내 아들의 밥상이다.


초등학교 급식에서 어느 순간부터 천덕꾸러기가 된 반찬이 있다. 첫 발령으로 학교급식을 먹은 건 24여 년 전이고 2000년도 9월 발령에 교실급식을 먹던 기억 속에도 김치를 못 먹는 학생이 있었다. 그때도 조금씩 달라 그랬었나?


한식의 대표적인 음식에 발효음식... 한국인이 사랑하는 김치가 요즘만큼 학생들의 급식에서 천대받은 적이 있나 싶다.

2020년 이전에는 김치를 성인이 먹는 일반 크기로 잘라온 걸 배식했다면 코로나 시절부터는 잔치국수나 김치볶음밥에 들어갈 만큼  잘게 잘라서 나온 걸 배식하고 있다.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수년 째 듣는 말은

 "김치 주지 마세요!!!"

 "제일 작은 걸로요!"

 "안 돼요! 덜어 주세요!(ㅜ.ㅜ)"

급기야 급식당번이 되면 자기가 싫어하는 친구의 급식판에 김치를 많이 준다는 뜬소문이 있을 정도다.

급식을 실시하는 초등학교에서 계륵처럼 안 나갈 수는 없고, 잔반통에 버려지는 양이 꽤 되어서 안타까운 김치...

어린이용으로 맵지 않고 생김치에 미니멀 사이즈로 총총 썰어 나오건만 더 작은 김치를 외치는 학생들에게는 산 넘어 산... 매일 종류까지 다르게 신경 써서 나오는 배추김치, 깍두기, 섞박지, 오이소박이, 생깻잎김치, 가끔 나오는 백김치 등 이름도 다른 무수한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는 어린이들에게 맛있는 음식보다는 기피대상으로 여겨지다니... 김치를 사랑하는 나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특히 이번 해는 김치를 못 먹어서 유독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 가정에서 어렸을 때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일 울먹거려서 고민거리다.

 "김치 먹고 토한 적 있어요!"

 "김치가 들으면 서운하겠다."

 "한국인이라고 꼭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오늘도 학생들의 성토는 이어진다.

 그 학생에게 특별히 하루는 급식당번일 때 김치를 배식하게 해서 안 받으려는 학생들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애정을 가져보도록 해보니 그날 엄청 작은 한 조각을 먹었다고 말한다. 당당하게 식판을 내미는 학생 앞에서 빙그레 웃음을 짓는 내 마음을 너는 모르겠지. 안타깝고 대견하기도 한 속사정을.


그래... 나이 들면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직접 김장에 참여해 보고 김치에 대해 배우는 노력, 자신의 입에 맞는 김치를 찾는 노력까지 학생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이번 해에도 뽑아 드는 비장의 카드는 김치대장 선발인가? 해마다 김치홍보대사를 역임하는 김치 잘 먹는 학생은 무한칭찬과 본인의 찬양을 받지만 이번 해에는 뽑을 학생이 없어 보여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짜보아야겠다. 김치 홍보주간 구상이다.


월요일: 집에서 먹은 김치 이야기해 보기

화요일: 김치 다 먹은 학생에게 비타민 사탕 주기

수요일: 특식 많은 요일. 김치 리필하면 인기메뉴 한 개 리필 가능으로 안내하기

목요일: 김치 다 먹은 학생에게 알림장 라벨로 만들어 주기(친구 거 먹어주면 2개 줘서 선물 유도)

금요일: 김치 관련 주말일기 쓰기


드러나게 김치만 공략할 필요는 없다. 김치 먹으면 어떻게 해 줄게의 공략은 장기적으로 김치를 기피대상으로 고정시키는 것과 같다.

김치를 달콤한 샤인머스캣처럼 인기메뉴로 만들 방법은 없는 걸까... 선거일로 쉬는 오전 혼자 끙끙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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