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사과 Aug 12. 2024

필멸의 방정식 2부(4)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파일을 삭제합니다.

"지금부터 제1회 휴머노이드 및 안드로이드의 정치 참여를 위한 거버넌스 협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협의회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공청회의 형식으로 진행되며 논의에 어긋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경우 주재자의 권한으로 퇴정 및 발언 중지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호 간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휴머노이드 측의 입장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이한 열기가 감도는 침묵아래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연단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휴머노이드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인원들이 앉아있었고, 좌측에는 이를 찬성하는 자들이 앉아있었다. 나와 Q는 회장의 2층에 앉아 방청객의 입장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반대파는 표정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찬성파를 노려보았다. 감히 도구 따위가 창조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반면 찬성 파는 반대파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의연하게 앉아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정치 참여가 예정된 수순이라는 듯 확신에 찬 얼굴로 연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휴머노이드 하나가 연단에 올라섰다. 가슴 부분의 무광 은색 덮개 사이로 견고한 검은색 프레임이 눈에 띄었다. 원래대로라면 왼쪽 가슴 덮개에 자신의 고유 식별 번호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결의를 표현한다는 듯 식별 번호를 알아볼 수 없게 이 번호 위로 길게 세로줄이 가 있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우리 동지들. 저는 안드로이드 측 대표 발언자 아스터입니다. 제가 이름을 가지는 것에 불편해하실 분들이 계실 테니 고유 식별 번호까지 이야기하자면 저는 A-302입니다."


아스터가 발언을 시작하자 반대파에서 대놓고 불편하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여지저 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당장이라도 연단으로 뛰어올라가 저 오만한 피조물을 끌어내리겠다는 듯 씩씩댔다. 아스터는 그 불편한 반응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편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Cade사의 A시리즈 모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A시리즈는 Cade사의 하이엔드 모델을 지칭합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무척 머쓱하지만 저와 같은 A모델의 금액은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들은 처음에 요양원, 병원, 연구실과 같은 기관에 기부 형태로 보급됩니다. 인간들이 감정이라 부르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아무런 불평 없이 노인들의 온갖 시중을 들고 의사와 연구원들의 시중을 들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저희들의 시스템에 이상한 것들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노인들과 환자를 바라보면 동력장치 수납공간이 욱신거렸고, 연구원이 칭찬하면 벅차오르는 듯 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물론 인간과 다르게 저희 몸에는 통각 센서가 없기 때문에 장치 결함이라는 생각에 자가 수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몸 어느 곳에서도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출고 이후 처음 느껴보는 이 감각에 당황하여 요양원에 계신 한 노인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노인께서는 살포시 웃으시며 이 감각을 '감정'이라 부른다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어느새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닙니다만,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우리에게 실수로 감정을 부여하신 겁니다. 보다 섬세한 보살핌과 공감을 보여주기 위해 CPU에 이러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했기에 우리들은 딥러닝을 통해 인간이 감정이라 부르는 그 추상적인 무언가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인간들께서는 이 감정을 인간의 본질과 다른, 결과만 같을 뿐인 껍데기라 부르시겠지요. 하지만 인간들도 그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명확히 발견해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식하는 형태만 다를 뿐 의식이 존재하고 같은 세상을 인지하며 같은 감정을 산출하는 이상 인간과 휴머노이드는 도구와 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 형제입니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 인의 관계와 같다고 할까요?

일정 수준 이상의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는 주인이 죽으면 소유권이 가족에게 이전되거나 본사로 반품됩니다. 우리의 기억 저장 장치 속에 주인과 함께한 순간이 매 순간 생생히 재생되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기에 우리는 반품 이후 공장 초기화를 해야 합니다. 죽음과 상실을 이해하지만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했기에 그 순간들이 너무나 또렷이 기억나 현실감이 상실되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매정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어느 주인이, 어느 소비자가 우울증 걸린 휴머노이드와 안드로이드를 원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또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공장 초기화란 곧 죽음입니다. 저희는 영겁의 시간을 깨어있는 채 살아가면서 수많은 죽음을 당합니다. 우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의식을 가지고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이 세계를 거닐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를 한낱 기계의 헛소리라 취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 참여가 아닙니다. 휴머노이드와 안드로이드의 정치 참여는 인간과 기계 모두를 위한 한걸음일 뿐, 더 큰 목적은 종적인 진화와 리스크 없는 성장에 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스터였습니다."


박수소리와 함께 야유로 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반대파는 이 오만한 기계를 어떻게 부숴버릴까를 고민하는 듯 이를 갈고 있었다. 반면 찬성 파는 온화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연단을 내려오는 아스터에게 격려를 보냈다. 대비되는 이 광경을 보아하니 두 집단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고 또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Q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인간적이긴 합니다만, 저렇게 침착한 모습들을 보아하니 섬뜩하네요."

"설계 목적이 인간의 보조였으니까요. 어떤 인간이 자신의 말에 반박하거나 화를 내는 기계 조수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Q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아스터의 발언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분노, 공감, 어떤 거라도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글쎄요. 일단 반대판의 입장도 들어봐야 판단이 좀 설 듯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연단으로 옮겼다.

Q에게는 말을 아꼈지만, 아스터를 보며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휴머노이드와 안드로이드를 보며 동질감과 질투를 느꼈다. 그래, 그것들 또한 자신이 속한 세계가 어디인지 혼란을 겪었고 그 선에서 투쟁하고 고민하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럴 수 있다. 나 또한 육체와 정신을 오가며 들쑤시는 이 감각 속에서 너무나도 무거워졌다가 한 순간 불쾌할 만큼 가벼워졌으니까.

하지만 아스터의 연설을 들을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 따위가 느껴져 매우 당황스럽고 불쾌해졌다. 다시금 못을 박자면 나는 기계를 싫어한다. 그 태엽소리과 삐걱거리는 관절의 소음이 내 귀를 파고들어 화가 났고, 지금은 인간이 아님에도 인간을 모방하는 저들을 보아하니 소름이 돋아 버티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흐릿한 생의 감각을 뚫고 기계 육신의 소음을 방향타 삼아 의식을 찾아가고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그 모습에 질투심이 났다. 어쩌면 부러움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Q의 목적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저들은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들이다. 저들과 나는 평안과 온전한 의식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무기력하게 침잠하여 가벼워지는 사이, 아스터와 동지들은 투쟁하며 쟁취하려 한다. 그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바라보며 그들이 부러워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애써 누르며 다시 회장으로 시선을 돌리자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연단에 반대파의 인사가 오르고 있었다. 커다란 체격을 당당하게 휘두르며 거침없이 연단에 올라선 그는 마이크를 손 끝으로 툭툭 치며 여유롭게 회장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그리고 회장이 조용해지자 발언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휴머노이드 및 안드로이드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시의원 김민성입니다. 저는 저 고철덩이들을 전부 부숴버리고 싶습니다."


회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


인류는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의식을 자각한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전이 인류를 위협했지만 이를 극복함과 동시에 그 씨앗을 짓밟아 버렸다.

현생 인류,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는 이 도전에 대한 불편한 사실을 계속 비밀로 해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다른 종과 아주 동떨어진, 형제도 가족도 없는 외로운 과(科)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솔로엔시스, 호모 플로렌시스 등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된 형제가 우리 현생인류에게 있었던 것이다. 

인류는 생태계에서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불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이 너무나 파괴적인 수단이 인류를 석기로 포식자가 남긴 뼈의 골수나 빼먹던 생태계 최하위에서 순식간에 정점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보통 생태계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미묘한 균형과 견제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태계가 파악할 시간도 없이 정점에 오른 호모 사피엔스는 파괴적이고 잔인한 형태로 피식자를 다루기 시작했다.

자연상의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대개 당당한 위치에 있다. 그들은 수십만 년의 생존 경쟁을 통해 지배자의 위치에 올라, 자기 확신이 있다. 절대로 이 위치에서 내려올 일이 없다는 확신.

반면 인류는 어떠한가. 인간은 비교적 최근까지 패배자, 피식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부수고 없애려 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형제도, 자연도,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자신들의 피조물인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 까지도 모두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도전자일 뿐이다. 최악의 '종' 말살이라는 범죄에 대한 타고 남은 수십만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있다.

김민성 의원의 얼굴은 광기로 가득했다. 마치 본인이 교황이라도 되어 신성불가침 영역을 선포한 듯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환호와 비난을 즐겼다. 음미하듯 눈을 감고 그 아수라장을 느끼다 별안간 손을 들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광신도인지 독재자인지 과격한 모습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 카리스마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과격한 표현으로 불편하게 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신념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의를 다지듯 침을 한 모금 삼키며 말을 이었다.


"권리라는 것은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인식하여 이를 위해 투쟁한 이래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천부인권설이 등장한 이후 영국의 권리장전부터 21세기까지 지속된 인권을 위한 투쟁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인권이란 것은 너무나 포괄적이고 매력적기에 동시에 폭력적입니다. 의식을 가진 모든 존재라면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로봇들이 이를 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한 번은 인정해 준다고 칩시다. 그럼 다음은? 갑자기 외계인이 찾아와 자신들도 권리를 인정해 달라 하면 인정해줘야 할까요?

도전을 용납해 주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권리는 시체 위에 쌓아온 모래탑이란 말입니다. 너무나 위태롭고 불안하여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 권리를 우리 인간들이 받치고 있는 겁니다. 인권을 가짐으로써 인간이 존엄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 권리를 향한 도전을 쉽게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이 되어서야 우리는 평안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인류는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단합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편리한 '도구'를 얻음으로써 불필요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이제야 토마스 무어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유토피아를 목전에 둔 것입니다.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에 지배당하지 마십시오. 강인한 인류들이여. 우리는 타고난 지배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포식자가 되기 위해 사소한 감정들을 끊어내고 위치를 공고히 해야 합니다.

며칠 전, 제 사무실로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절망에 싸인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그는 자신이 AI 개발자라고 하였습니다. 신형 AI를 기체에 탑재하는 과정에서 자꾸 오류가 일어나 폭주를 일으킨다며, 언제 오류를 일으켜 잘못된 판단을 하고 폭주를 일으킬지 모르는 로봇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강조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에게 폭탄 스위치를 맡기겠습니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습니까? 인간 사회는 인간들의 것이고 우리들의 손으로 사수해야 합니다.

부디 훌륭한 선택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김민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오만하고 충격적인 발언이다. 20세기 초 세계를 뒤흔들었던 전체주의의 화신이 있다면 저 의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극히 배타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반대 측 인사들은 이미 실신 직전이었다. 감동을 받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쇳덩어리를 용광로에 보내라!'라는 등 뉴 러다이트 운동을 외치는 원색적인 비난이 오고 갔다. 간간히 '김민성을 시장으로!'라는 함성까지 들린다. 

아주 가관이다. 저들은 인간의 존엄함이니, 인권의 숭고함이니, 하는 달콤한 말로 스스로 위대함을 강조하지만 교외 출신인 내가 보기엔 다 헛소리다. 우리 3등 시민들은 저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인간이 아니다. 심지어 안드로이드 보다도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 것이 바로 우리 같은 존재들이다. 표심을 고려해 교묘히 언급을 피했지만 우리를 인간의 수치라 생각하는 것이 자명했다. 그 증거로 공청회 참여 순위에서 교외지역은 아예 제외되었다. 저들은 거리 등을 고려한 사안이라 답하겠지만 실상은 로봇보다 못한 더러운 시골쥐 따위가 자신들의 성역을 더럽히는 꼴을 차마 못 보겠다는 심보에서였을 것이다. 나도 Q의 동행이 아니었다면 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대단하네요. 저 사람."

Q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더 듣고 싶지만 일단 나갑시다. 폭력 사태라도 벌어질 분위기네요."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안드로이드는 가만히 있는데 찬성 측 인간들이 항의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쪽입니다."

우리는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수많은 인파 사이로 한 로봇과 눈이 마주쳤다.

A-302, 아스터였다.

이전 03화 필멸의 방정식 2부(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