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의 방정식 2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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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 있은 후 2주 뒤, 나는 Q와 함께 도심부로 가는 게이트로 향했다.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16차선의 도로는 차로 가득했다. 도심에서 나가는 방향에는 온갖 생활 폐기물과 부서진 잔해를 싫은 낡은 트럭이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줄을 지어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는 평생 돈을 모아도 그 문짝 하나 살 수 있을까 싶은 고급 차들이 즐비해 있었다. 자율주행이 일반화된 시대에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때로는 부자들의 독특한 취향이 흐름을 역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승차감이 좋다, 묵직한 탑승감이 주는 품격이 있다는 등 터무니없는 핑계로 흔해빠진 자율주행 차량 대신 기사가 운전하는 내연기관을 몰았다.
게이트에 다가갈수록 그 대비가 더욱 극명해졌다. 커다란 입처럼 생긴 게이트가 마치 못 먹을 음식을 입에 넣은 어린아이가 음식을 반사적으로 내뱉듯, 나를 뱉어낼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는 별개로 Q는 방독면을 벗었다.
그 안에는 마치 집에 돌아가듯 안심한 표정을 지은 Q가 있었다.
"아무래도 교외는 좀 답답하네요. 공기도 무거워서 밖에 나갈 때 방독면을 착용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요."
Q는 내가 '교외' 쪽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 말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교외지에 주거하는 사람들 중 방독면을 착용하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독면이 비싸서 구비하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Q가 말한 독한 공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저는 반대로 이쪽 공기가 불편하네요. 너무 깨끗해서 폐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반발심이 생겨 교외를 대표하듯 Q에게 쏘아붙였다.
Q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 상관없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확실히 공기가 다르다는 것은 공감하시죠? 다 Cade사가 설치해 준 이 게이트 덕분입니다.
원리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게이트에서 나온 막 같은 게 돔 형태로 도심을 감싸고 있어 유해물질을 차단해 주기 덕분입니다. 정부의 특혜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대단한 기술력이지 않습니까?"
그 대단한 기술력으로 빈부격차 같은 문제부터 해결해 보시지. 아니, 내 병부터 해결해 보시던가.
Q의 말대로 Cade사가 보유한 기술력과 자본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중국-러시아 전쟁 : 울란바토르 대리전]에서 중국이 패배한 후 배상금 지급 문제로 인해 대리전은 세계대전으로 확산되었다. 세계대전 직후 엄청난 수의 상이군인들이 발생했다.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피해도 극심했다. 오죽하면 격전지였던 평양 주변의 마을에서 백인백수라는 황당한 사자성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100명에게 달린 팔이 고작 100개라는 뜻이다.
그만큼 참혹한 전쟁이었다. 지금은 신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과거 사람들은 불로불사에 가까운 영생을 누렸다고 한다. 전쟁으로 모조리 끝나버렸지만.
이때 등장한 것이 Cade(Clavis ad evolutionem)사. 이들은 스스로를 '진화의 열쇠'라 부르는 오만함을 보였지만 그 수완과 기반은 전혀 오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감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적절했다.
연구소로 시작하여 한차례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몰락한 Cade는 전쟁 도중에 피아 구분 없이 전차, 공격용 드론, 전투기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닥치는 대로 팔아치우며 자본을 축적했다. 그리고는 전쟁 막바지에 가서 공격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AI, 의수, 의족, 로봇 등 첨단 회사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 자신을 지킬 길이 부족했던 기업들은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헐값에 넘겼다. 게다가 승전의 기미가 보이자 당시 미국, 유럽 연합을 필두로 한 연합군은 워싱턴 DC에서 전후 세계를 논하기 위한 회담을 가졌고 이 회담의 결과 발표된 '워싱턴 조약'이 Cade사에 매우 유리하게 적용됐다.
바로 '비 파괴적인 기술 개발에 대한 장려와 기업들의 전후 복구 의무에 대한 조항' 때문이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Cade사는 엄청난 면세 혜택과 보조금, 부지 선정에 대한 우선권 등의 혜택을 여러 국가로부터 약속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넘쳐나는 것이 노동력이었고 이들 모두 잠재적인 고객이었기에 Cade사는 잠자코 노아의 탈을 썼다. 이에 더해 상이군인과 난민들에게 의수, 의족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방산 기업, 벤처 킬러 등에서 이른바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 Cade의 독주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돛을 단 배에 순풍이 불어오듯 30년 만에 폭발적으로 성공한 Cade는 결국 인구 500만이 넘는 대도시인 이 도시를 국가로부터 넘겨받는 데 성공한다.
말이 좋아 휴머노이드 및 안드로이드 특구로 지정된 거지, 사실 이 도시를 Cade라는 회사에 팔아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부터 이 도시는 Cade의 실험실이 되어 기형적으로 발전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구 1000만, 안드로이드 및 휴머노이드와 같은 로봇 300만, 도합 1300만을 아우르는 개체들이 이 도시에 득실거리게 되었다. 이 중 로봇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인구가 교외지에 사는 900만 이상이라는 것을 차치하면,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저희가 도심으로 가는 이유는 기억하고 계시죠?"
"시청에서 공청회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휴머노이드의 정치 참여를 위한 거버넌스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된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뭐, 어느 시대나 박애주의자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거기에 정치인들은 표심을 생각해야 하고요."
요즘 휴머노이드와 안드로이드를 위시하여 그들의 정치 참여를 위한 시위가 활발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로봇이 인간의 삶에서 주축이 된 지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이 지났다.
세계대전에서 강력한 살상병기로 '사용'된 이들은 전 후 AI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인공지능의 육신으로 화하였고 이내 도구에서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를 갈망했다.
겨우 기계 주제에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게 소름 돋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의식체계를 형성하여 인간과 첫 의사소통을 할 때 부끄러우니 옷을 달라 했다. 수치스러울 부분이 하나 없는 강철의 몸뚱이였음에도 말이다.
인간의 산물답게 인공지능과 결합한 로봇은 소름 돋게 인간을 닮아 있었다. 우선 외형부터 인간을 닮아가고 싶어 했다.
불필요함을 감수하고도 사지 이상의 수족을 원하지 않았으며, 인간과 같은 감각 기관의 형태를 원했다. 눈의 위치에는 카메라를, 코의 위치에는 분자 센서 감지기를, 귀에는 음파 탐지기를 장착하는 식으로 말이다. 심지어 기름과 전기 따위의 연료 주입구의 위치를 인간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장착하기를 원했다.
이들은 인류와 인간사회를 미디어 정보로 습득했기에 탄생 초기에 인간 사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일들을 수행했다. 육체노동부터 단순 연산과 같은 일 말이다.
하지만 인류와 그 사회에 대한 정보를 점차 습득함에 따라 로봇은 더 나은 일을 원했다. 이른바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담당할 만한 일 말이다.
이때까지 로봇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시선은, 마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습득하며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기특하고 대견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문제는 이들이 점차 인간과 같은 수준의 것을 요구하며 생기기 시작했다.
인류는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종이다.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 등의 자신의 형제를 짓밟으며 외롭고 잔인한 생존 경쟁에서 승리했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어쩌면 자신보다 우월한 지성을 가진 존재의 탄생을 용납하지 못하기에 이들의 도전을 묵살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세계대전 이후 다시 전운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로봇의 도전은 인류의 생각보다 순진한 정공법이었다.
그들은 인류의 법과 제도 속에서 싸우기를 원했고 종국에는 자신의 권리를 그들의 창조주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이러한 배경하에 로봇(그리고 몇몇 정신 나간 박애주의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논할 시위를 계속했고, 그 성과로 이 상징적인 도시에서 공청회를 갖기로 한 것이었다.
"전후 사정은 알고 있습니다만 저를 왜 그 자리에 데려가는 겁니까? 제 병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요?"
Q는 예상했다는 듯이 나의 질문에 답했다.
"당신의 병은 육체가 떠나가려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과 같아요. 과거에는 육체가 주도권을 잡았기에 억지로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힘이 약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랬기에 정신이 육체를 떠나갈 수 있었던 거죠."
나는 어이가 없어 한 순간 벙 찌고 말았다.
"종교에 너무 심취하신 거 아닙니까? 진심으로 그게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그게 사실이더라도 제가 공청회에 참석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뭐, 휴머노이드야 말로 우리 시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육체와 정신이 명확히 분리된 존재들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더 말해봤자 그의 생각이 확고해 바뀔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Q도 나에게 더 이상 말을 시키지 않았다.
불편하고 어색한 침묵을 뒤로한 채 차는 시청을 향해 나아갔다.
시청으로 가는 길에는 로봇들이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로봇에게 자유를!", "로봇에게 투표권을!" 따위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가두행진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