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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Jul 29. 2024

필멸의 방정식 2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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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 속 삶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이었다. 인간의 슬픈 본성 때문에 나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동시에 무수한 바늘에 찔려 고통받았다.

그래, 말하자면 나는 고슴도치였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꾸물꾸물 모여드는 고슴도치.

한 덩어리가 되자 서로의 가시가 온몸을 파고들어 다시 떨어지는,

그럼에도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서로를 감싸 안을 수밖에 없는 슬픈 생명체.

그런 슬픈 운명의 한 부스러기가 나라는 인간이었다.

나에게 타자는 고통 그 자체였다. 시끄럽고, 무지하고, 배려 없는 개체들.

그들은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요구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본성에 의해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그리고 서로 상처를 입는다.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란 채로 밀어내는 나도, 밀쳐져 추위 속에 떨게 되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그들도, 모두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나는 거리를 두기로 했다.


기억이 시작될 즈음 나는 이미 소음에 둘러싸여 있었다.

소음은 어느 순간 스며들어 나의 거리에 왔다. 그 날카롭고도 치명적인 소음들.

한 떼는 그 소음에 강력히 매료되어 나도 그 소음의 한 부분이라 착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나의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불청객, 나의 문을 마음대로 열어젖힌 채 무례하게 다가오는 불청객 같은 것이었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타고난 예민함이 신경통으로 다가왔고, 그것들이 추가되어 나를 이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나의 이런 성향을 병으로 받아들여 치료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천성에 가까운 날카로움은 가족들의 노력을 귀찮은 간섭으로 받아들이게 했고, 성인이 될 때쯤 나를 향한 그들의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계속되는 치료와 간섭에 대항하는 듯 갈수록 예민해지는 나의 신경통을 가족의 정으로 담아두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시선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의 시선이 닿을 때 느껴지는 묘한 불편함과 부담감은 구역질이 날 만큼 무거웠다.

게다가 이 시선이란 것인 물리적 의미의 인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카메라, 로봇의 눈 등 인간의 감각 기관과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표면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인간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나를 피사체로 담을 때면 불쾌함이 느껴졌다.

내가 살던 곳은 국가에서 Cade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휴머노이드 및 안드로이드 특구로 지정한 곳으로 어디를 봐도 로봇을 볼 수 있었다.

Cade는 이 도시의 전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도심에서는 그 흔적을 발견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차를 타고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이 도시가 숨기고 싶은 과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수도인 A시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중앙 정부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던 도시는 약 30년 전부터 Cade의 실험실 비슷한 것이 되어 도심에는 세계의 첨단을 달리는 온갖 종류의 로봇과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뽐내지만, 교외에는 과거 이 도시의 상징과도 같았던 재활용 공장이 늘어서 있다. 다 먹은 과자 봉지 한 귀퉁이에 숨어 있는 부스러기처럼.


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여러므로 혼잡스러운 이 도시는 나에게 지독한 고문실이었다.

어딜 가나 느껴지는 시선들과 귀를 꿰뚫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들.

숨을 쉬기조차 괴로운 곳에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던 나는 떠나려 했다.

그러나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사는 시궁쥐였던 우리 가족은 가뜩이나 없는 형편에 더욱 끌어모아 나의 치료에 전념했기에 결국 본인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이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이 도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정착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 줄 수도 없었다.


하나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쯤 도시 복지의 일환으로 Cade사에서 교외인 대상으로 특별 채용을 실시했다는 것이다.(교외인이라니. 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가! 애초에 그들은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교외 토박이에 특이한 진료기록까지 가진 나는 별 무리 없이 Cade에 입사할 수 있었고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AI에 의해 나의 진료기록이 인정되어 곧 자료보관소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보직으로 인사명령을 받았다.(AI에게 감사할 일이지만 스스로 부속품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자조에서 나온 혐오로 인해 나는 이때 AI와 같은 부류를 혐오하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나의 삶은 초월감이 찾아오며 한층 더 고통스러워졌다.

아이러니한 점은 어느새 찾아온 이 감각이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생의 감각이 흐려지는 느낌과는 별개로 초월감이 엄습한 이후 자잘한 일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토감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는 게 맞겠지만, 신상이 가벼워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무거움과 가벼움, 유물(唯物)과 관념 그 대비 중에서도 최악만을 골라 넣은 듯한 지독한 양자택일은 점차 나를 갉아먹었다.


"단순한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그 신경통을 진단한 의사는 그 병을 뭐라 판단하였습니까?"

Q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진료기록에 나와있을 텐데요."

"기록은 많은 것을 말해주죠. 하지만 그 안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특히 이런 종류의 기록은 당사자에게 듣는 것이 더 정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기억을 더듬었다. 대부분 약을 타러 가거나 정기 검진 때 만난 것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중에 하나 기억에 남아있는 게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의도로 말을 했던 건 기억이 납니다. '육체와 신경이 정신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최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급한 대로 아무 하드웨어에나 집어넣은 것 같다.'라고요. 아마 '냉장고에 VR 게임 소프트웨어를 억지로 집어넣은 셈'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네요."

내 말을 들은 Q는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은 탐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부조화가 현재 상태의 해결책을 알려줄 수도 있겠네요.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가기 전에 프런트에서 꼭 약 타가시고요."


계속 상담을 받아봤자 바뀌는 건 없었기에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약을 탄 후 병원을 나서자 플로팅 홀로그램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오늘 상담은 어떠셨나요? 만족하셨다면 별 5개, 불만족하셨다면 별 1개를 눌러주세요!'

둥그런 얼굴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모자를 쓴 이 홀로그램에 어딘가 심술이 나서 별 1개를 누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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