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의 방정식 2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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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비현실적인 공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갈망하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커다란 뇌를 망상으로 가득 채우고 눈을 치켜뜬 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길 바라며 주변을 불살랐다. 그 망상들 가운데 특히 비행에 대한 욕망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늘을 하늘이라고 인식한 순간부터 인간에게 그곳은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두발이 땅에 묶여 떠날 수 없는 천형을 받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시작은 동물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인간은 비행의 비결이 날개라 생각했다. 인간은 커다란 날개를 만들고 이를 등에 짊어진 채 높은 곳에서 스스로를 던졌다. 될 리가 없었다. 밀랍이 녹아 하늘에서 떨어진 이카루스처럼 비행에 대한 꿈은 허상인 듯했다. 오랫동안 공상의 영역에 갇혀 있던 묵은 꿈은 아주 기초적인 기계장치가 발명되던 무렵, 다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DNA는 수만 년 전 평야를 달리며 수렵하던 원시 인류와 그리 차이가 없었기에 기계의 힘을 빌려야 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오랜 욕망 중 하나를 이룰 수 있었다. 드디어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까지 두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 형제들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호모 속의 생태는 불안정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필연적으로 불가능함을 내재한 이상과 현실을 강제로 추돌시켜 타협점을 이끌어내는 그 능력. 인류는 그 결과물로 인해 파멸될지라도 공상하고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슬픈 자기 파멸적 운명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안드로이드 또한 그런 운명의 산물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의식을 가진 채 철학하기를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자기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무수한 시도를 했다.
대부분의 질문이 해결 가능해진 이 시대를 걷고 있는 인류에게 가장 큰 질문은 두 방향을 택했다.
(1) 바깥을 향하는 경우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인간은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가.
(2) 안쪽을 향하는 경우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의 스스로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첫 번째 방향의 경우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차츰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구의 인간들은 현실에 매몰되어 살거나 지구 자체를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소재의 발견과 고질적인 연료 문제의 해결로 천체 간 이동이 현실화되었으며 극단적인 테라포밍이 가능해진 인류는 인공위성부터 시작하여 달, 이제는 화성까지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류는 이제 지구라는 물리적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지구교'의 등장과 국가 연합에 반발하는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지구인과 식민지 행성인의 차별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에 인류는 우선 바깥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세계 유수의 석학들은 인문학의 부활을 외쳤다. 세계대전이 인간성의 상실에서 발단하였다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게, 자본주의의 격화와 인간성은 반비례 관계기에 세계의 흐름이 자본에 따라 결정되면서 인간은 파편화되고 자신의 위치를 잃어갔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대전의 시작은 유라시아 대륙의 한 나라에서 다시금 파시즘을 선언하고 핵무기를 사용하면서부터였다. 22세기 초반에 들어가면서 [서울 조약]에 따라 전 세계가 비핵화를 선언했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이에 무색하게 온 하늘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으로 뒤덮였다.
전 인류적인 비극의 시작은 지구 연합의 출범과 함께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세계가 시끄러웠기에 인류는 이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자 대규모 포럼과 세미나가 연일 열렸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조리 참여한 이 자리에서 인류는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여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쟁의 광기가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한 것인지, 이들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Cade사에 전폭적인 투자와 함께 '인간과 아주 흡사한 AI와 안드로이드를 만들 것'을 주문한다.
Cade는 전쟁 이전, 그러니까 인간이 불멸에 가까운 삶을 살던 시절, 비인도적인 실험과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하지만 전쟁 도중 연구소에서 기업체로 탈바꿈하여 새로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Cade는 금세 이전의 명성을 회복했다. 그들은 실패한 세계의 잔재를 긁어모으는 와중에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에 반발하여 이루어진, 어쩌면 전쟁의 시발점이 된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이카루스'는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에 대한 반발로 Cade의 내부에서 이루어진 실험적인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이카루스 프로젝트'의 발단이었다.
아스터는 이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었기에 나를 지극히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전후 사정을 생각해 보았을 때 타당한 결론이었다. 나를 만들 당시 그러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탄생과 관련된 정보는 프로젝트가 취소되며 폐기되었고 나의 정보 저장 장치 속 폐쇄회로에만 저장되었기에 아스터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들은 내가 로봇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나의 기원에 대한 해답은 밝히지 못했다.
나는 이스터에 의해 산산이 분해되었다. 나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내부를 살펴야 했기에 필수적인 과정이었지만, 뜬 눈으로 내 몸이 해부되는 걸 바라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수술대 비슷한 것에 올려 나의 복부를 개방하자마자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닌 것을 알았다. 피처럼 붉은 액체 사이로 대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한 장기가 보였는데, 그 위에 (주) Cade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자포자기하는 기분이 들어 로봇 팔이 내 몸을 해부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분해가 끝난 이후 완벽히 봉합된 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을 때 아스터가 태블릿을 하나 가져왔다.
"이 태블릿에 당신의 모든 정보를 복사하여 담아두었습니다. 아마 당신의 근원과 문제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태블릿을 받아 들고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정보를 읽어나갔다. 일종의 매뉴얼처럼 제조년월, 제품규격, 주의사항, 세척 및 보관방법, 참고사항 따위가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 당신이 가진 유년기의 기억들, 부모님에 대한 추억들 전부 몰입을 위한 설정일 겁니다. 영화 제작팀도 참여해서 만들었다고 하니 알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나는 위로랍시고 떠드는 아스터를 무시한 채 참고사항 탭을 열었다.
내 근원과 정체가 확실해졌기에 이제는 그 감각만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