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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Oct 03. 2024

필멸의 방정식 2부(10)

케이크 한 조각

오늘도 비가 내린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변에 보이는 건물 안으로 대피하는 모습이 보인다. 유독성 폐기물로 가득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니 당연히 몸에 좋을 리 없었다. 독극물을 가득 품은 빗방울이 바닥에 닿자 이를 감지한 센서가 요란하게 울린다.   

"유독성 물질이 감지되었습니다. 주변의 높은 곳으로 이동하여 지붕 아래에 대피하여 주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유독성 물질이……."  


도로 양옆으로 1m 정도 높이의 차폐막이 올라온다. 빗방울이 튀어 피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빗발치는 안전 안내 문자가 한데 섞여 소란스러움이 커진다. 빗방울이 LCD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빛과 어우러져 묘한 환상감을 불러일으킨다. 몽환적이고 직선적인 구름이 도시를 가득 메운다. 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울적함이 밀려와 라테오는 참을 수 없었다. 빗소리가 불러주는 우울한 장송곡에 감정이 지배당한 것은 아니다. 이런 비쯤이야 이틀에 한 번꼴로 쏟아져 감정을 느낄 일도 아니고, 애초에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감성에 젖을 정도로 그는 감상적이거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라테오의 불만은 비가 그치고 난 후 벌어질 일에 기인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투명한 유독성 쓰레기는 곧 하수구를 타고 처리장으로 향해 재사용될 것이다. 아무리 철저한 소독과 필터링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정수를 한다지만 닫기만 해도 발진을 일으켜 병원 신세를 지게 하는 물을 사용한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는 법을 상실했다. 과거 이 도시가 만들어지던 시점, 때로는 개인적으로 혹은 지각 있는 단체에서 정수 시스템 등을 연구하여 비판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연적인 순환에서 이미 회생 불가능한 오염 수준을 가지게 된 물을 정수를 하였더라도 일반 가정에 보급하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이미 과거 지구가 멀쩡했던 시절을 기준으로 깨끗한 물은 환경 보전 구역으로 지정된 극소수의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가격이 매년 천정부지로 올라 서민으로서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논리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순한 비판에서 그쳤기에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스러져갔다. 어찌 되었든 물은 마셔야 하고 당대 최고의 테크 기업인 Cade 사에서 기술에 대한 보증을 나섰기에 사람들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실, 깊게 생각해 봤자 도리가 없었기에 포기한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빗물이 하수 처리장으로 흘러간다 해서 유독물질이 도로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방사성 물질의 양과 산업 폐기물이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고장 난 지구의 순환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 전문가마다 예측을 다르게 내놓았지만, 결론적으로 '한참 남았다.'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 정도로 지독한 유독물질 수프는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기에 비가 그친 후 제거 및 소독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 물론 도시 대부분이 AI 기반 로봇으로 건물과 도로 소독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창문틀의 구석과 문틈, 도로 연석 사이 등 인간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때도 있었다. 또한, 비가 내릴 때마다 함께 쏟아지는 수많은 종류의 피해보상 관련 민원을 처리해야 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AI가 처리한다. 하지만 일에 치여 이런 일에 할애할 시간이 없는 일반 시민과 달리,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기에 관련 부서 공무원과 상담사가 직접 대면으로 투입되어 그들을 달래주어야 한다.   


라테오는 재난안전국 산하 재난관리안전본부 재난관리실 소속의 공무원이다. 재난안전국은 '범지구적 시민 연대(GCU-Global Citizens' Union)'의 선임연구원이 '망가진 지구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인간들의 악착같은 발버둥.'이라 표현할 정도로 이미 회생 불가능한 지구에서 단일 세대의 생존만을 위한 이기적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현재의 생존을 위해 법적으로 일정 부분 금지된 약물과 기술을 사용하여 소독, 정수, 구호를 자행해 왔다. 이러한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환경단체는 환경보호국에 조정을 부탁하였고 다년간의 논의 끝에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를 해소하기 위해 재판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환경보호국에서 걸어온 권한쟁의심판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노력은 해당 집단의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받은 이후 그들의 독주는 멈출 수 없었다. 재난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재난안전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미래세대의 안위는 현세대의 생존에서 비롯된다는 재판소의 판결은 일종의 선례를 남긴 꼴이 되어버렸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판결 이후 여타 정부 부처와 단체 및 기업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선이 있어 과도한 수준의 행위에는 제재가 가해졌지만, 이 수준이라는 것도 애매하여 제재가 가해질 것 같은 경우 로비로 빠져나가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었다.   


라테오는 언제나 이러한 상황과 자신이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정치나 로비나 자신과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관심을 가져봤자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될 뿐이라고 애써 언론과 소문을 무시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려 해도 배운 게 있어야 비판을 하든, 찬성하든 할 게 아닌가. 게다가 이 시대에 공무원은 정부의 일을 실행하는 정권의 하수인이라기보다,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잡일꾼 취급이었다. 이러한 자조적인 분위기는 직장 내에도 가득하여 그가 목소리를 내봤자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본인만 피곤할 것이 뻔하기에 라테오는 신경을 껐다.   


비가 계속 내린다. 아까보다 더욱 거세게 창문을 두들긴다. 라테오는 뜻 모를 무력함과 다가올 일에 대한 압박감에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지쳐 책상에 엎드렸다. 그때 누군가 그의 책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월급도둑이 따로 없네. 일과 시작한 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퍼진 거야?"  


알마샤르였다. 같은 소속 동료인 그는 짙은 갈색의 피부에 잇몸이 드러날 듯 환하고 반듯한 미소를 장착한 매력적인 남자다. 알마샤르는 등장만으로 침체한 사무실의 분위기를 형광등만큼이나 밝게 만들어주는 인물이었다. 반곱슬의 머리칼을 앞머리만 길게 길러 뒤로 멋지게 넘긴 후 포마드로 세팅한 그의 모습은 울적한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환히 빛났다. 술자리에서 들은 바로는 21C, 국가와 지역의 정체성이 뚜렷하던 시기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여 아라비아반도 지역에 살던 그의 조상은 세계대전 이후 흩어져 알마샤르의 조부모 대에 와서 이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착과 관련된 조부모의 실수 중 가장 큰 것이 유독성 기체로 인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이 도시에 정착하여 잘생긴 그의 미소를 가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주변을 밝게 해주는 능력이 있었다. 여러모로 라테오와 비교되는 동료였다. 당연히 윗선에서 평가도 좋아 동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팀장을 앞두고 있었다.  


"밖에 비가 옵니다. 예비 팀장님. 본격적으로 일할 시간이 다가오니 저희 같은 청소부가 우울해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라테오는 불현듯 질투심과 더불어 동경 비슷한 감정이 들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약간의 비아냥 섞인 장난을 건넸다. 알마샤르는 그의 반응에도 괘념치 않고 크게 웃으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능글맞은 대응에 김이 새 라테오도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언제나 하시던 이야기가 있어. AI, 로봇 같은 고철 덩어리들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일은 인간에게 맡겨야 하는 법이라고. 자랑스러워하라고, 거짓말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 몇 안 되는 물질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을 위하는 정직한 직업이니까."  


라테오는 알마샤르의 말을 듣고 다시금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낙천적인 것도 심하면 병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최악의 집단에서 하수구나 청소하고 부자들 비위 맞추며 사는 게 뭐가 정직하다는 거야."  


알마샤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정말 빌어먹게도 멋들어져 라테오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친구. '가장 찬사를 들어 마땅한 사람은 사람들이 부당하게도 그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칼릴 지브란이라고 알아? 할아버지가 항상 끼고 다니던 [예언자]라는 책의 작가인데, 아마 모를 거야.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비록 기생충이니 시궁쥐니 하면서 욕을 먹어도 우리는 사람을 위하잖아? 정치 같은 복잡한 것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하는 행위가 죄악은 아니란 거지."  


라테오는 침묵했다. 염세주의적 세계관으로 단단히 무장한 그의 생각으로 알마샤르의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와 토론을 할 정도로 지식이 훌륭한 것도 아닐뿐더러 이 직장의 유일한 친구를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훌륭한 녀석이 왜 자신같이 음울한 인간과 친하게 지내주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비가 그치는 것 같은데. 일어나, 이 게으름뱅이야. 장비 챙기자고."  


알마샤르의 말대로 어느새 빗발이 약해져 경보기의 시끄러운 알림음이 꺼져가고 있었다. 창밖을 힐끗 내다보니 사람들이 슬슬 건물 밖으로 나서려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라테오는 한숨을 쉬며 태블릿과 보호장구를 챙겼다. 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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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곳곳에서 노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헝겊과 대걸레를 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틈새에 달라붙은 유독성 물질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선 덩어리 진 오염물을 헝겊으로 일일이 닦아 제거해야 한다. 그 후 공장에서나 사용하는 강력한 공업용 이물질 제거제를 분사해 사이사이 낀 물질을 표면과 분리해 준다. 다음은 고압 공기 분사기를 통해 오염물을 제거하고 윤활유를 발라 상처가 난 표면을 부드럽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튄 이물질을 시설에 설치된 흡수기를 통해 빨아들이면 끝이다. 한 블록을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시간이니 계획을 잘 작성해야 교통을 방해했다는 민원 없이 마무리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일 처리를 잘한다 해도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날아오는 것이 민원인만큼 다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AI가 작성한 계획과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에서 유행했던 놀라운 기술력의 장치 없이 그들은 AI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한바탕 정리가 끝나면 이제 인간을 상대해야 할 시간이다. 21세기부터 지금까지 유용하게 사용되는 키오스크에 결제를 위해 카드를 삽입하는 것처럼 가까운 무인 민원 처리기에 주민등록증을 넣으면 마이크로 칩을 인식해 피해보상 절차를 처리하기에 대부분의 대인 민원은 지금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민원인은 이러한 관공서의 일 처리를 선호한다. 직접 서류를 갖추어 방문하고 공무원을 마주해 이리저리 답답한 설명을 듣고 있자면 울화통이 치밀기도 하고 인간이 하는 일인 만큼 실수가 있을 수도 있어,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인간보다 기계를 더 신뢰하는 세상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라테오로서는 할 일이 줄어들기에 고마운 일이었다. 문제는 도시 꼭대기, 그러니까 유독성 물질을 뿌려대는 저 새까만 구름 너머 위치한 가진 자들의 도시 ‘카엘룸’의 주민들이다.   


세계대전은 단순히 인간들의 삶과 육신만을 앗아가지 않았다. 전쟁 당시 사용된 수많은 치명적인 무기들이 지구 생태계 자체를 바꿔놓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변화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속도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계는 재앙을 잉태하는 지옥이 되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이 망가진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거점을 잡고 거대한 반구(半球) 형태의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한 국가에서 Cade 사에 운영권 전체를 내주며 한 지역을 맡기면서였다. 계획은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도시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며 거점으로 잡은 지역에 거대한 반투명의 반구를 건설했다. 그리고 도시 전부를 로봇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도시의 개발, 정비 그리고 보전을 위해 토지, 교통 등 전부를 기계화한 것이다. 심지어 내부의 환경과 안전, 보안까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추가로 만들어 적용했다. 이를 관리할 주체는 당연히 AI였다. 한 도시를 관리할 만큼의 강력한 AI는 당시 기술로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Cade 사는 여러 실험을 통해 그들의 관리하에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AI 군체를 만들었다. 성공적인 실험으로 전 세계의 구애를 받은 Cade 사는 백수십 년이 훌쩍 지나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영향력을 지닌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의 발목을 잡을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예상외로 아주 전통적인 문제가 Cade 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지전능한 지배자의 영역에 올랐다고 생각한 그들은 인간의 지극히 동물적인 본성이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었다.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의 인구는 점점 늘어났고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더 많은 일자리를 원했고 더 나은 복지를 원했다. 주거공간이 부족하니 도시를 마련해 달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표심을 의식한 정부의 은근한 압박과 요청도 있었기에 Cade 사는 머리를 짜내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했다. 사실 도시를 짓는 것은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자리 잡을 거점이 없다는 것이 Cade 사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의외로 Cade 사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지구교’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인간이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던 시절 우주로 향해 나아가던 그들을 가로막고 맹신적인 교리로 지구를 벗어나선 안 된다고 외치던 그들이 Cade 사의 앞에 나타난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였다. 당시 우주 개발의 첨단에 섰으며 현재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한 진범 앞에 지구의 화신과도 같은 자들이 나타났으니, 평행선을 달리던 기찻길에 교차점이 형성된 셈이다. ‘지구교’는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를 짓고 거대한 통로를 뚫어 두 도시를 연결하자 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는 유독성 구름 위에 지어져 환경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며, 지상 개념의 새로운 정의를 주장했다. 친절히 설계도까지 작성해 온 ‘지구교’가 원하는 것은 정식 종교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새로운 도시에 교단을 설치할 수 있도록 정부에 로비해 주는 것이었다.  


Cade 사는 ‘지구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10년이 지나기 전 첫 ‘카엘룸’이 완공되었다. 카엘룸 입주명단은 Cade 사와 정부가 선정한 필수 인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그 명단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카엘룸은 도시에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고하게 하늘에 있었다.   


라테오는 장비를 두러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하늘을 보았다. 어두운 구름에 악마의 성처럼 새까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카엘룸이 보였다. 그림자가 마치 ‘넌 여기에 올라올 수 없어.’라고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져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졌다. 가시화된 명백한 계급 나누기에 불만을 가질 마음조차 사그라들었다. 괜히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발로 찼다. 쓰레기가 벽면에 부딪히자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경고문이 홀로그램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적발 시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라테오는 한숨을 쉬며 쓰레기를 주워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너덜너덜한 장비들이 바닥에 끌렸다.  


명확히 하자면, 라테오는 카엘룸에 올라갈 수 있다. 속할 수 없을 뿐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카엘룸에서는 민원이 빗발친다. 유독성 빗방울에 영향을 받지도 않건만 카엘룸의 주민들은 재난관리안전본부에 민원을 넣는다. 그들의 민원이란 번개가 쳐 우리 아이가 놀랐으니 피해보상을 하라거나, 관리 부실로 오염된 물품이 올라왔다는 등 시답잖고 황당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어두운 구름 색 때문에 우울증이 도졌다며 정기적인 방문과 치료, 담당자의 정중한 사과를 요청하는 민원인도 있었다. 라테오와 같은 공무원들은 가당키나 한 민원인가 싶다가도 카엘룸 주민들의 영향력과 재력이 아른거려 꾹 참고 위로 향했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도시 중앙에 있는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에 있다. 신분을 증명한 후 원통에 들어서면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보이는데, 이에 탑승하여 카엘룸으로 향하는 것이다. 라테오는 배탈이 난 것 같은 표정으로 어색하게 정장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짜증이 날 만큼 아름다운 자태의 알마샤르가 멋들어진 자태로 재킷을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잘 어울리네, 그거.”  


같은 가게에서 기성품으로 맞췄건만, 왜 이렇게 차이가 심한지. 라테오는 애써 열등감을 감추고 동료의 맵시를 칭찬했다.  


“고마워, 너도 잘 어울려 라테오. 뭐라 해야 하나, 코브라 같아!”  


분명, 자신의 살짝 굽은 목에 옆으로 쭉 째진 눈을 염두에 두고 애써 쥐어짠 칭찬일 것이리라. 어이가 없어 그를 흘겨보았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으로 들을게,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민원이야? 나는 평상시처럼 기분이 우울해졌으니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민원. 저번 그 아저씨가 다시 민원을 넣었더라고. 우울하면 병원에 갈 것이지, 왜 우리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어.”  


알마샤르는 라테오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그쪽 세계는 잘 모르지만, 정신병원 가는 게 큰 흠이래. 사업에도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자식들이 학교에서 퇴학당할 수 있는 사유가 된대. 우울도 유전이라나, 대단한 사람들도 미신에 의존하나 봐. 나는 오늘도 그 지구교 신자 아저씨. 터무니없는 이유로 민원을 넣고 하소연이나 늘어놓겠지. 우리가 무슨 방문 상담사인 줄 안다니까.”  


둘은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온몸을 칭칭 감는 벨트가 설치된 좌석으로 가득했다. 라테오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화가 날 정도로 억울한 자신의 직업에 유일한 장점이라면 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묘한 부유감과 함께 귀가 먹먹해진다. 코피가 날 듯 코끝이 간지럽다.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느껴져 우울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순간 덜컹, 하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의아함에 시간을 보니 어느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개운함이 기분 좋게 몰려옴과 동시에 민원인을 상대할 생각에 짜증이 솟구쳤다. 옆자리를 보니 그의 동료는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그의 발끝을 차버리자 화들짝 놀라며 두리번거린다. 그 모습이 마치 그물에 걸린 생선인 듯 우습게 느껴져 저열한 쾌감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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