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맑음'입니까?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혼불〉1권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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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첫 문장이다.

효원의 혼례가 있던 날인데 애석하게도 잠포록한 날씨였다니. 효원의 인생을 예고하는 문장에 한참을 머물면서 집필 당시의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작가들마다 첫 문장은 보다 신중할 것이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 첫 문장을 쓸 때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로 쓸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쓸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한다. '이'와 '은', 조사 하나가 소설 전체 흐름을 좌우하기에 긴긴 고민을 했단다. 최명희 작가도 일만오천 장의 소설 첫 문장을 위해 여러 날 고민했을 것이다. 단단하고 우람하고 튼실한 효원은 예고처럼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는다. 그녀의 단단함에 서걱서걱 찬 서리가 내리고 그녀의 강모에 대한 "네가 나를 어찌 보고……. "아니꼬움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혼불〉에는 이보다 더한 인생이 있다. 허물어져가는 종갓집에 흰 덩을 타고 들어온 청암부인. 혼례식을 치른 지 삼 일만에 열병을 얻어 목숨을 잃은 남편, 이준의. 한순간에 남편을 잃은 청암부인은 남편을 따라 죽을 수도 없다. 종가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물로 받은 비단 몇 필을 팔아 논을 사고 가세를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시동생 병의로부터 큰아들 이기채를 입양하고 가문의 대를 이어간다. 청호저수지를 만들어 가뭄에 대비하고 쌀을 훔치러 들어온 도둑에게 쌀가마니를 지어 주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하는 큰 그릇이다. 청암부인은〈혼불〉에서 대들보 역할을 한다. 그런 그녀의 혼례날의 날씨는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그녀 인생은 비 오고 바람 불고 흑암일 때가 많았다. 다만 뿌리를 깊게 내리고 일제강점기의 고단한 날씨를 견뎌냈을 뿐이다.

우리네 인생살이 중에 매우 쾌청한 날씨는 며칠이나 될까? 언젠가 즐겨 보았던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우리 인생의 맑음과 흐림은 해석의 차이일 것이다. 선택된 해석으로 우리 하루하루를 채색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는지. 내가 걸어가는 삶의 모퉁이들은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화창한 날일 수도 흐릴 수도 있겠다.

당신의 오늘이 '맑음'이기를 빈다.

#인생길 #〈혼불〉#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