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걸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끝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을. 첫 직장에 입사할 때는 그곳에서 퇴사할 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3년 후 나는 주임 타이틀을 달고 입사 당시 연봉보다 20%를 높여서 퇴사하고 이직 시에는 그 연봉의 다시 10%를 올려 받겠다 내지는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2년 후에는 기획력을 업그레이드해서 이직 시에는 기획력을 겸하는 직무로 확장 포지셔닝 하겠다와 같이 구체적일수록 좋겠다. 목표의 성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목표를 세우고 그 방향을 인식하며 나아가는 하루하루와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한 이직만을 꿈꾸는 것과는 그 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첫 직장을 선택해서 생애 첫 출근을 했을 때 나는 참으로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지금 이곳은 내 실력을 발휘할 만한 곳이 못 돼. 그러니 여기보다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해야 해. 그래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이루어야 할 목표는 제쳐두고 그저 더 좋은 네임 밸류를 지닌 회사에 이력서만 넣은 채 하루하루를 허비했다. 구체적 내용도 계획도 실체도 없이 첫 직장에 써넣었던 이력을 그대로 컨트롤 C, 컨트롤 V하면서 하늘에서 더 좋은 회사가 나에게 무작정 떨어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가장 큰 그림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마지막 직장을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는 연봉 2천에서 연봉 2억으로 퇴사하겠다라던지 햇병이라 디자이너에서 디자인 기업의 오너가 되겠다라던지. 내가 이런 생각을 했을 리가 더더욱 만무하다. 다만 나도 한때 한 번 정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이름 있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들의 삶의 모습을 인터넷으로 추적하면 잘나가는 카피라이터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펴낸 책 등을 보며 부러워하면서 60세에도 카피라이터로 일하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하나의 직무에서 점점 확장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도태될 뿐이야. 딱 여기까지만 생각했다. 더 앞으로 나아간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 직업의 세계를 내가 바꿀 수 없다면 직업의 세계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 내가 집중해야 할 부분을 찾았어야 했다. 주니어에서 시니어 카피라이터 그 다음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타이틀을 달지 않으면 나이 많은 카피라이터는 그 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없음을 알고 다음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끝을 생각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막연함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나만을 들이밀었을 뿐, 그 세계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사람들도 있다. 60세에도 자기 브랜드를 내걸고 카피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렇거나 아니거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되고 싶은 나가 과연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이다.
사실, 끝을 생각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이 직장생활을 통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써 과연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나 자신과의 깊이 있는 대화인 것 같다.
내가 첫 직장부터 실패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 하나 핵심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시작할 때 제대로 된 끝을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