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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안녕 앵두

by 수잔


스물네 살의 지훈은 오늘도 앵두와 함께 걷던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강아지 이름은 앵두. 지훈이 12살 때부터 함께했던 형제이자 소중한 반려견이다.

앵두는 시골 할머니댁 옆 집 개가 낳은 새끼다.

작은 얼굴, 큰 귀, 작은 몸집의 믹스견인 앵두는 사람을 많이 경계했지만

지훈과 가족들한테 만큼은 애교 많은 강아지였다.

때로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똑똑한 강아지, 앵두.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면, 앵두는 언제나 꼬리모터를 돌리며 달려와 지훈을 맞았다.

앵두가 보일 때마다 지훈의 고단함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대학생이 된 지훈은 타지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앵두를 자주 볼 수 없었다.

어쩌다 영상통화로 앵두를 보거나 주말에 본가를 방문해 함께 산책하는 정도였다.

바쁜 생활 속에서 앵두는 점점 지훈의 일상에서 멀어져 갔지만

방학마다 지훈은 앵두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지훈은 강아지 수명이 인간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앵두한테 소홀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서

방학마다 하루에 두 번씩 앵두와 00천을 걸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보며 신나 하는 앵두를 볼 때마다 지훈은 행복했다.

그렇게 지훈은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학교 수업을 듣고 자취방에 돌아와 짐을 풀고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통화 괜찮니? 요즘 무슨 일 없지?"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지훈은 불안했다.

"전화로는 말을 못 하겠어서 문자로 보낼게. 확인해 봐. 아들."

곧 휴대폰으로 문자 알림이 왔다. 어머니의 문자에는 이런 말이 담겨있었다.

'앵두가 어제 교통사고가 났어.'

심장이 철렁했다. 지훈은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안 났다.

곧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고, 어머니는 훌쩍이며 지훈에게 상황을 이야기해 주셨다.

지훈의 집은 단독 주택인데, 문이 열린 틈으로 앵두가 뛰어나갔던 것이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슬픈 상황 자체를 마음속으로 부정해 버리니까.

지훈은 3시간 동안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됐다.

곧 지훈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눈물 때문에 눈앞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 펑펑 울었다. '나 이제 어떡하지? 앵두 없으면 어떡하지?'

자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앵두가 생각난다.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그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음 날이 시험인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앵두 생각만 지훈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지훈은 어머니 심부름으로 꽃집에 가고 있다.

길가에서 산책하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며 앵두 생각을 하고 있다.

앵두의 세상은 지훈이었을 것이다. 좀 더 예뻐해 주고 놀아줄걸.

하루에 산책 3번도 넘게 해 주고,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먹일걸.

사진 좀 많이 찍어놓을걸.

꽃집에 도착해서 지훈은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온통 하늘빛이었다.

노란 장미도, 흰 국화도 없었고 오직 푸른색의 꽃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심지어 꽃집 주인 여자도 오늘은 다른 사람이다.

'누구지? 처음 보는데...'

지훈은 무심코 인사를 건넸고, 여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훈에게 하늘빛 꽃을 내밀었다.

"원하시는 꽃은 델피늄 맞죠? 돈은 따로 안 받고 선물로 드릴게요."

여자의 손에는 델피늄이라고 하는 꽃모종과 작은 화분이 있었다.

"집에 가서 심어봐요. 그리고 사랑 듬뿍 담아서 평생 물 주면서 잘 키워주세요."


지훈이 꽃집에서 나왔을 때에는 꿈을 꾸었던 것처럼 멍했다.

어머니는 분명 지훈에게 작약을 사 오라고 하셨지만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모종과 화분을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베란다에 나가서 꽃모종을 여자가 준 화분에 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앵두 사진 옆에 화분을 놓았다. 앵두가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봤더니 델피늄의 꽃말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게요.'라고 한다.

지훈은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꽃이 자기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델피늄이 자라고 꽃송이가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지훈은 시리면서도 따뜻했다.

앵두가 떠난 후 암울했던 마음이 꽃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점점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리움이 차올랐다.

소중한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과정은 이런 건가보다. 보고 싶고, 슬프고, 아리지만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는 그런 과정.


강아지별이 떠올랐다. 지훈은 강아지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한 세상인 강아지별에서

앵두는 지금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앵두가 지훈이 더 이상 슬퍼하지 말았으면 않길 바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워하며 미소를 짓는 지훈의 모습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앵두를 생각하며 웃던 지훈은 그 꽃집 여자가 왜 델피늄 모종을 내밀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반려견과의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슬픔을 떠나보내는 것이 앵두가 바라는 지훈의 모습일 것이다.

앵두는 지금 강아지별에서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는 생각에 지훈은 미소를 지었다.

델피늄의 꽃송이가 하나둘 피어나며 지훈의 삶에도 다시 빛이 들어왔다.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 앵두가 지훈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안녕, 앵두

항상 내 마음속에 너를 두고 열심히 살아갈게.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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