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로 가는 길: 말보다 더 큰 조언

'존재' 그 자체로 전하는 말

by 꿈꾸는 미래

D+3.9 | "주눅 들지 말아요, 이미 훌륭해요"

“해외로 나가요.”
“한류 열풍 덕분에 한국인에게 관심이 많아요.”
“미국에서는 학부 배경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잘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대학원 갈 수 있어요. 취업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스탠퍼드 대학 SLAC 가속기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님은 열정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동안의 삶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박사님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내게 끊임없이 조언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세월의 무게가 담긴 시골 할머니, 그 모습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늘 근면과 성실, 절약과 내 집 마련, 저축 그리고 또 저축에 대해 말하셨다. 끊임없이 던져지는 동일한 주제의 이야기에 대해 나는 더 이상 대꾸할 감정적 이성적 여력이 없어, 말의 절반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평생 집 한 채-방 세 개, 화장실 두 개-마련하는 목표와 성취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지만, 평소 부동산 시장에 집중된 경제 구조를 못마땅해하는 나는 그 열정을 다 공감하기 어렵다. 적금과 금리에 관한 조언도, 세계 주식 시장의 성장세를 알고 있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만 반응한다. 발에 안 맞는 신을 신어 자꾸 넘어져도 '멀쩡한 신발을 버릴 수 없다'라고 계속 신고, 넘어지고, 병원에 가는 동안 몸은 점점 상한다. 그래도 '돈을 안 쓰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는 분께, '돈을 쓸 때 가치가 생겨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고, 늘 아쉬웠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나는 허투루 살 수 없었고,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모는 애정을 가지고 자녀에게 끊임없이 조언하지만, 자녀는 다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는 존재 자체로 자녀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박사님은 학생들과 나이 차가 크지 않은, 가까운 선배였다. 그래서 그토록 열정적으로,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이야기하듯 큰 애정을 담아 조언하셨던 것이다.


며칠 뒤 한 학생이 내게 말했다. “교수님, 저 진로를 정했어요! 실제로 해외에서 연구하는 분을 직접 만나보니, 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됐어요.”


박사님은 긴 시간 학생들에게 조언하셨지만, 사실 그의 말보다 '그가 살아간 삶' 자체가 이미 학생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말보다 더 큰 조언은, 결국 ‘존재’라는 것을.

keyword
이전 18화실리콘 밸리로 가는 길: 공짜 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