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자

1. 출소

by 수수


철커덩.


그토록 무겁고 굳게 닫혀 보였던 철창문이 쉽게 열렸다. 문수는 문지방을 넘어 출소라는 새 출발의 발걸음을 뗐다.

아무도 그를 기다려주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 배웅하러 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문수의 아내는 그가 요청하는 사항이면 그 무엇이든 들어주고는 했다. 은빛으로 물든 새벽에도 음료수 먹고 싶다는 문수의 말에 '내가 나가서 사 올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여자였다. 문수는 '그냥 해 본 얘기야. 이 시간에 어딜 나가.' 하며 아내를 말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아내조차 나오지 않았다.


문수의 죄명은 '살인미수'였다. 아무리 억울함을 토로해도 들어주는 이 없었다. 가족들도 믿지 않았다. 변호사조차 믿지 않았다. 그렇게 문수는 7년형을 받았다. 7년 동안 면회를 온 사람은 재심을 신청했던 변호사였을 뿐, 아무도 문수를 찾아오지 않았다. 문수는 7년 동안 철저히 혼자였다. 문수조차 7년 동안 감옥에서 침묵했다. 조사받는 동안 말은 일을 더 커지게 하는 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밥도 혼자 먹었고, 죄수들과 엮이지도 않았다.


결국 문수는 7년 동안 모든 것을 잃었다. 출소 후에도 혼자였다.


문수는 거처부터 구했지만 가진 돈으로는 보증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그새 집값이 올라버렸다. 결국 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제공하는 단칸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발을 뻗고 누웠다. 감옥에 있을 때와는 기분이 묘하게 달랐다.

문수의 얼굴 옆으로 작은 햇살이 들어왔다. 문수는 햇살이 불편했다. 드디어 자유를 얻고 쉬고 있는데, 문수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문수는 햇살이 불편해서 그런데 가릴 것이 없냐고 관계자에게 물었다. 관계자는 '그런 거 없어요.'라며 짧은 대답만 남기고 서류를 살폈다. 이건 분명 무시하는 태도였다.

문수는 자신의 처지가 무시받을만한 처지인가?라는 생각에 잠겨 며칠을 고민했다. 무시받지 않고 새 출발을 하고 싶고, 아내도 되찾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있는가? 밤낮을 고민한 끝에, 문수는 외출을 했다.


서울 외곽, 고급 빌라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란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찰랑.


부동산의 문을 열자 종소리가 들렸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허름한 행색의 문수를 보고는 처음엔 놀랐지만, 문수를 깍듯이 모시며 커피까지 타다 줬다.


"어떤 매물 보러 오셨어요? "


문수에게 질문하는 태도도 공손했다. 문수는 이 부동산이 마음에 들었다.


"급매로 나온 빌라 중에 한 두 군데 좀 볼 수 있을까요? 이 동네는 처음이어서요. 그리고 지금 저도 거처가 급하고."


문수의 말에 공인중개사는 바로 차키를 가지고 문수에게 "가시죠." 하며 그의 차로 안내했다.


공인중개사의 차에 타 바라본 동네 풍경은 꽤나 보안이 철저하단 느낌이 들었다. 입구가 어딘지도 보이질 않고, 집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조차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중에 한 빌라로 공인중개사가 들어갔다. 여기가 주차장 입구구나. 문수는 신기했다. 어떻게 구조를 이렇게 지었을까. 고독사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엄청난 폐쇄성.


"가시죠."라는 말을 한번 더 하며, 문수를 안내하는 공인중개사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명함을 두 번이나 검사받아야 했고, 엘리베이터에서 '외부인 전용'을 탔다.


"여기가 보안은 철저하고 귀찮아 보여도 외부인한테만 그래요. 입주자는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어요. 자, 다 왔네요. 3201호. "


3201호 문이 열렸다. 집주인은 방금 샤워하고 나온 듯 샤워가운을 대충 걸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문을 열어줬다.


"둘러보세요." 짧은 한마디와 함께 사라진 그는 다시 옷방에서 볼 수 있었다.


하얗고 깨끗한 집이었지만, 마냥 하얗지만은 않았다. 군데군데 금으로 만든 선반이 있었고, 공인중개사가 말하길 이것들은 모두 기본 옵션이라고 했다.

주방조차 금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문수는 이 집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편히 둘러보고 가세요."라는 인사를 끝으로 집주인은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외출했다.


문수와 공인중개사는 가벼운 목례로 답변을 대신했다. "저 친구가 저와 친해서 그래요. 원래는 이렇게 집 못 보여줘요. 하하." 공인중개사는 부끄러운지 잠깐 고개를 숙이더니 계속해서 집을 소개했다.


"혼자 살기엔 적당할 거예요. 72평에다가 옷방도 따로 있고요. 옷방도 아주 크게 나왔어요. 한번 보실래요?" 라며 자기 집인 양 옷방을 소개했다. "크게 나왔죠?". 문수는 공인중개사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펼쳐진 정장들과 가운데 선반에 모여 있는 값비싼 시계들, 그리고 넥타이. 전부 명품들이었다.


"여기 집주인 뭐 하는 사람이에요?"란 질문이 문수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 그건 원래 알려드리지 않는데.. 하하, 뭐 알려드려도 되죠. 원래는 동대문에서 중국에서 옷 떼다가 택갈이 해서 팔았던 애예요.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사업 방법들로 지금은 패션브랜드 하나 차려서 대박이 났죠. 사실 제가 그때부터 봐왔던 애라 이렇게 쉽게 이 빌라부터 소개드릴 수 있던 거예요. 다른 곳은 이렇게 함부로 못 보여드려요." 라며 또 한 번 쑥스러운지 공인중개사는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 볼게요."


문수는 공인중개사와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하나 받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 브랜드 정장을 맞춰 입었다. 그리고는 그때 그 빌라로 향했다. 공인중개사의 명함을 가지고.


문수의 짙은 향수 냄새와 단정한 행색에 별 의심 없이 보안 검사가 통과됐다.


외부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3201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라는 질문에 문수는 대답했다.


"며칠 전에 집 보러 왔었는데,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요."


의심 없이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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