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백의 무대
※ 다소 잔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의하시고 읽어주세요.
의심 없이 열린 문 안에는 집주인의 모습 대신 드라이기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구경 좀 해도 될까요? "
문수는 드라이기 소리에 질문이 파묻히지 않도록 좀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둘러봐도 문수는 이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은 드라이기를 끄고 정장차림으로 거실로 나왔다. 거실의 금색 테두리를 손 끝으로 훑고 있는 문수를 보고 집주인은 놀란 어투로 인사했다.
"어휴, 이렇게 입고 오셔서 제가 못 알아봤네요. 티오피부동산에서 보고 가셨던 분 맞죠?". 집주인은 정중한 말투로 명함을 건넸다.
"제가 여기 급매 내놓은 이유는 집 하자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제가 3개월 동안 중국에 가서 그래요. 월세로 내놓을까 하다가 공항이랑 좀 더 가까운 집으로 이사 가려고요. 해외 출장 다녀와서 집에 오는 거 보통 피곤한 게 아니잖아요. 아시겠지만."
명함을 건네받은 문수는 '아시겠지만.'이라는 집주인의 맺음말이 마음에 들었다.
약간 흐뭇해진 문수는 명함을 가만히 보았다. 김성진. 집주인의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잘 알죠. 혼자서 갇혀 있다가 출소하는 느낌이랄까. 한동안은 적응 안 되고 힘들죠." 문수는 문수대로 답했다.
그런 문수의 대답에 집주인은 엄지를 척하고 올리며 비유에 감탄한 듯 반응했다.
"저보다 형님 같으신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님, 저 출국날짜가 얼마 안 남아서 굉장히 급매물이에요. 어느 정도 더 깎아 드릴 수 있어요." 집주인은 문수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깎아주실 필요는 없고, 곧 제가 매매할 것 같네요. 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정원도 내려다 보이고." 집주인은 버릇처럼 엄지를 척하고 또 올렸다.
문수는 점점 대답대신 엄지를 올리는 집주인의 태도가 불편했다. 나를 무시하나?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건가? 매매를 한다는데도 왜 저런 태도지? 문수는 그의 행동에 냉소적인 생각에 잠겼다.
"형님, 제가 지금 외출을 해야 해서요. 만약 마음에 드시면 부동산 안 끼고도 저랑 그대로 매매 계약서 작성하시는 거고, 저 못 믿겠다 싶으시면 티오피 부동산에 연락해서 계약하셔도 되고.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저 일단 먼저 나가겠습니다. 더 편히 둘러보다 가세요. 아참, 작은방도 꼼꼼히 보셔요. 제가 끝내주는 거 하나 설치 했으니까." 하며 집주인은 또 한 번 엄지를 척하고 올렸다.
문수의 트리거가 발동했다.
문수는 익숙한 듯, 사체의 육질과 뼈를 발라 분리했다. 사체의 육질은 야들야들해질 때까지 푹 고왔고, 뼈는 세 차례에 걸쳐 인근 폐공장 분쇄기에 갈아버렸다. 남은 뼛가루의 흔적은 바람에 흩날려 보냈다. 사체의 육질은 다섯 차례에 걸쳐 진짜 음식물들과 섞어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했다.
집주인의 핸드폰은 닷새 내내 울렸다.
하지만 지금 전화받기가 곤란하다.라는 말로 메신저를 보내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초인종이 소리가 났다. 문수는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어줬다.
문수는 이제 이 집주인이니까.
"안녕하세요. 전 김성진 사장님 비서 정한규라고 합니다. 혹시 사장님 집에 안 계시나요?"라는 질문에
문수는 "이제 제 집이에요. 엊그제 계약했습니다. 사장님 일은 모르는 일입니다." 평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정한규는 집요하게 물었다. "아직 이 집 소유자가 사장님으로 되어 있던데요. 이렇게 비싼 빌라를 명의도 바꾸지 않고, 연락도 안되세요. 죄송하지만, 사장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정한규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문수는 "예전에 동대문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예요.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나요? 명의야 우리 사이에 천천히 바꾸면 되고요. 우리 둘은 급할 게 없습니다. 전 성진이와 집 계약을 했고 더 이상 연락할 일이 없습니다."라는 차가운 답변을 건넸다.
비서 정한규는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문수에게 90도 인사를 하고 외부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본인 외에는 모두 외부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게 한 김성진.
한 회사에 사장이 닷새 넘게 부재인 급한 사안에도 불구하고 보안을 뚫어야만 들어올 수 있도록 개인적인 시간을 중시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문수는 인지했다.
김성진의 핸드폰은 일주일정도만 바쁘게 울려댔고, 그 후엔 잠잠해졌다.
인터넷을 보니 김성진의 회사는 급하게 CEO를 바꾸며 운영을 이어갔고,
김성진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김성진의 가족조차 김성진을 찾지 않았다.
김성진이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2년 전이다.
메신저 내용도 별 것 없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 등 성가신 내용들이었다.
조용해진 김성진의 삶, 문수는 지금 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작은방을 둘러보란 김성진의 말이 기억났다. 방 5개 중에 가장 작은 방문을 열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막 커튼, 시폰이 걸린 작은 캐노피 침대, 그리고 벽면엔 온갖 성인용품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변태새끼." 문수는 조용하게 읊조렸다. 문수는 그 방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 후, 그 방은 절대 열리지 않는 방이 되었다.
문수는 매일 아침 김성진의 옷방에 들어가 새로운 옷들을 입었다.
입어도 입어도 계속해서 옷이 남았다.
시계와 넥타이도 매일 바꾸고, 김성진의 차량을 요일마다 바꿔 타며 의미 없는 외출을 했다.
법무보호공단으로 찾아온 문수는 주차장에 슈퍼카 한대를 주차하고, '자립'이란 이유로 보호정지를 신청했다.
관계자는 "어떻게 된 거예요? 일주일 동안 뭐 하셨어요?"라며 문수를 향해 물었다. "돌아가신 친척이 제 파이를 남겨두셨더라고요. 그게 다예요."라며 서명을 마친 뒤, 금세 자리를 떠났다.
다시 슈퍼카에 올라탄 김성진, 아니 김문수는 이제 완전히 김성진이란 무대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