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답
문수는 종종 김성진의 SNS에 의미 없는 사진과 글을 올리며 김성진의 생존신고를 했다. 왜 연락이 안 되냐는 댓글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게 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이 커질 것 같았다.
어느덧 첫 번째 관리비 용지가 나왔다. 350만 원. 문수는 눈을 의심했다. 당장 350원조차 없는 문수는 눈앞이 아득해졌지만, 그 사이 문수의 눈에 들어온 아주 작은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3개월 체납 시,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할 수 있습니다.'. 문수는 이 문장이 '3개월 동안은 살 수 있다.'로 읽혔다. 문수는 남은 2개월 동안은 김성진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주위로 창 밖에 비치는 불빛들이 마치 문수를 살려준 것만 같았다.
김성진의 지갑에 1만 원이 남았다. 두툼했던 김성진의 지갑은 어느덧 얇아지다 못해 딸랑 종이 한 장만 남아 있던 셈이다. 1만 원으로는 일주일도 못 버틸 문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뇌했다. 식비라는 게 상당히 골칫거리였다. 그러다 문수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중고거래 플랫폼.
문수는 야채를 닮은 플랫폼 앱을 김성진 핸드폰에서 찾았고, 김성진은 이미 이 플랫폼 이용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로 희귀 식물을 샀던 것 같았다. 거실을 둘러보니 이미 축 쳐져서 죽어가는 화분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족히 150cm는 넘을 것 같았다. 가격을 알고 보니 죽어가는 모습까지 예술품처럼 보였다.
문수는 식물들의 사진을 최대한 전문가처럼 찍었다. 아니, 그나마 이 분야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처럼은 찍었다. 김성진이 이미 올려놓은 판매내역들과 채팅 말투들은 체화한 상태였기 때문에 찍은 사진을 그대로 올리고 내용을 써 내려갔다.
'급한 이사로 잘 키워주실 분 구합니다.'
구매내역을 보니 400,000원이었던 식물이었지만, 김성진이 키운 노동값도 쳐서 450,000원에 글을 올렸다. 곧바로 연락이 왔다. '플랫폼 첫 이용자'라는 문구가 떠있는 유저였고, 언제 어디로 찾아가면 되냐고 물어왔다. 김성진은 늘 지하주차장 경비실에 앞에 판매물품을 놓는 일명 '문고리거래' 방식으로 거래를 해왔다. 문수는 김성진과 똑같은 방법으로 지하주차장 경비실 앞에 놓을 테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답을 했다.
20분 내로 오겠다는 상대방. 문수는 허겁지겁 플랫폼에 올린 화분을 지하주차장으로 옮겼다. 지하주차장 경비원들이 일제히 몰려와 도와드릴 것은 없는지 물어보았고, 문수의 "중고거래요. 팔 거예요." 대답이 끝나기도 무섭게 재빠르게 보안팀이 경비실 앞까지 화분을 옮겼다. 그리고는 문수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로써 문수는 의식주 모두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왜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아무나 붙잡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김성진의 집으로 돌아와 '지하주차장에서 보관 중입니다.'라는 말을 마무리로 김성진의 핸드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바꿔놓았다.
문수의 수중에 450,000원이 순식간에 생겼다. 남은 화분은 8개. 남은 2개월을 버티기엔 충분했다. 문수는 450,000원을 들고 호텔로 향했다. 슈퍼카 차량 한 대가 들어오자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문수에겐 괜히 그렇게 보였다.
차에서 내린 문수에게 매니저 한 명이 붙어 본인을 소개한 뒤,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물었다. "마에기." 짧게 식당 이름으로 답한 문수는 예약 없이 너무나 손쉽게 뷰가 가장 좋은 곳에 앉았다. 식당까지 안내를 했던 매니저는 깍듯하게 인사하며 자리를 비웠고, 문수는 메뉴판에서 45만 원어치의 식사를 주문했다.
초밥 한 입, 남산뷰 한 입. 그리고 입안을 따스히 데워주는 일본식 차. 문수에겐 이 모든 것이 본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니라고 외쳤는데도 가족마저, 아내마저 등 돌려버린 자신에게 세상이 선물을 주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문수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지나가는 남자들의 옷차림을 보았다. 각양각색이었지만, 대부분 정장이었고, 김성진이 소유한 브랜드 옷들이 많았다. 문수는 지금 이 옷차림과 이 장소가 정답을 맞힌 기분이었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지난 시간들이 후회됐다. 더 일찍 실행할걸.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성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는 아니었고, 문자 같았다. 운전 중이라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기분만큼은 매우 찜찜했다. 잠잠했던 김성진의 인생이 시끄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온 김문수는 자연스럽게 김성진의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5개의 문자가 연달아 와 있었고,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내용은 그 누구보다도 김성진을 잘 아는 사람인 듯했다.
[ 오빠 나 한국 왔어 ]
[ 결혼하려고 들어온 거야 ]
[ 오빠 정말 괜찮겠어? 나 결혼해도 괜찮겠냐고 ]
[ 연락이 왜 이렇게 안돼? 요즘 어디서 뭐 해? ]
[ 성진 오빠, 지금 공항에서 오빠 집으로 가고 있어 ]
문자가 온 시각은 오후 8시 32분. 문자를 확인한 시각은 9시 14분. 인천에서 이곳까지는 2시간이 걸린다. 문수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이 신원미상의 여자가 차를 돌릴까. 한참 고민한 끝에 문수는 딱 한 문장의 문자만 보냈고, 더 이상 그 여자의 연락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