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자

14. 또 다른 제안

by 수수

"그래서요?"


등뒤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문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경찰인 건 알겠는데 제 신분증을 왜 요구하시죠?"


"확인해 볼 사항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요?"


하며 문수는 지갑에서 김성진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지금 문수의 모습과 잘 구별가지 않을 정도로 김성진의 주민등록증 사진은 형편없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원조회를 마친 경찰은 다시 발걸음을 돌렸고, 배가 고팠던 문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오히려 갑자기 엄청난 포만감을 느꼈다.

더 이상의 여관 생활은 저 경찰 때문에 위험하다고 판단한 문수는 즉각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오피스텔로 향한 문수는 초인종을 누르며 말했다.


"부동산에서 저번에 보고 갔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요?"


다행히 주말이라 집주인은 집에 있었고, 문은 흔쾌히 열렸다.

문수와 나이대가 비슷한 남자였고 키는 좀 작았지만 몸집은 우람했다. 목이 한껏 늘어난 회색 반팔티에 남색 반바지를 입은 집주인은 대충 집을 소개해줬다.


"여기가 안방이고요, 여기가 화장실. 그리고 나머지는 부엌 겸 거실이에요. 별거 없어요."


정말로 별거 없었다. 소파 1개, TV 1개가 전부인 거실, SS침대 하나가 전부인 침실, 치약칫솔이 전부인 화장실.

지금까지 호화스러운 빌라에서 살다가 이런 곳을 보니 문수의 기분은 급격히 좋지 않았다. 스스로 신분을 낮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 나가세요?"


"지금도 나갈 수 있어요. 다시 서울로 가려고요."


"아, 그러시구나. 저 부엌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요리하는 사람이라."


문수는 순식간에 자신을 셰프라 소개했다. 집주인은 별로 관심 없어했다. 문수는 한방에 끝낼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

괜히 싱크대 물도 흘려보내며, 손과 다른 눈의 방향으로 도구를 찾던 문수 눈에 딱 띄는 물건이 있었다.


집주인은 핸드폰을 보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거실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문수는 다시 집을 구경하는 척하며, 집주인을 처리했다. 집주인은 핸드폰을 껴안고 쓰러졌다. 스마트폰 시대답게.


이 동네는 후처리가 매우 쉬운 곳이었다. 언제나 분쇄기가 돌아가는 곳이라 시끄럽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은 문수를 '새로 이사 온 총각'이라며 벌써부터 반겼다. 문수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거기 집 나갔어요?"


문수는 아차 싶었다. 동네가 좁아 거래 하나하나가 소중한 부동산에서 이 집의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수가 동네에서 조금씩 보이자 전화를 한 것.


"네. 저희끼리 계약했어요."


"이상하다... 월세로 했어요? 아니 아직 집주인 이름이 그대로길래."


"네, 명의는 그대로고요. 저 잠깐 살다 나갈 거라 월세로 했어요."


알겠다며 전화를 먼저 끊은 부동산. 문수는 고민에 잠겼다. 공인중개사까지 처리를 해야 하나. 이 동네에서 지금 문수에게 언제 공격대상이 될지 모르는 두 명, 경찰과 부동산이었다. 여기서 더 소란스러워지면 소문이 금방 날 것 같으니 최대한 외출을 자제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초인종이 눌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보던 TV소리도 줄이고는 인터폰을 쳐다봤다.

최미소였다. 문을 열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중 최미소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여줬다.


잠금장치를 걸어둔 채로 문을 살짝 열었더니 최미소가 보였다.


"다 열어도 돼. 할 말 있어서 왔어."


"무슨 할 말. 연락하지 말라더니."


"너 내 동생 봤지? 일단 문 좀 열어줄래? 들어가서 얘기하게."


"내가 널 뭘 믿고 문을 열어?"


"더 이상 김성진으로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


'김성진'이란 세 글자에 문수는 문을 열어줬고 최미소는 신발을 신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KakaoTalk_20250707_051012463.png


"넌 서서 들어."


"짧게 얘기하고 나가."


"내 동생 좀 처리해 줘."


최미소의 제안은 놀라웠다.

아무리 자매사이가 안 좋다 하더라도 이런 부탁은 문수도 당황케 했다.


"내가 왜?"


문수의 역질문에 최미소는 푸하하. 한번 웃더니 문수를 향해 비웃으며 말을 쏟아냈다.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니? 뉴스도 안 봐? 내가 너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겠어? 너를 의심하고 있는 경찰이 이 동네에 있어. 김성진 신분증 사진이 개차반이라 수사망 피할 수 있던 거지. 너 진짜 다시 옥살이할 뻔했어."


다시 옥살이? 문수는 최미소가 그의 과거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안 건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질문을 참았다. 묻게 되면 더 옥죄일까 봐.


"너 지켜줄게. 김성진으로 평생 살게 해 줄게. 회사 승계받게 해 준 은혜 갚으러 왔어. 대신에 한번 더 내 부탁을 들어줘. 그럼 내가 다시 그때 그 7년 전 그놈 안 만나게 해 줄게. 걘 아직 출소하려면 3년 더 남았던데. 또 보고 싶은 건 아닐 테고."


문수는 멈칫했다. 그놈까지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질문을 참았다. 생각에 잠긴 문수는 끔찍했던 옥살이 시절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겨우 구겨 넣고 살고 있는 기억을 다시 꺼내니 속이 메스꺼웠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무슨 처리를 원해."


KakaoTalk_20250707_051929738.png


대답을 들은 미소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문수에게 다가온다. 미소가 다가올 때마다 미소의 귀걸이가 찰랑인다. 문수와 간격이 가장 가까워졌을 때, 미소가 운을 뗐다.


"너답게 없애줘."

keyword
이전 13화마지막 방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