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경수와의 대면
"내가 왜 너랑 얘길 해야 하는데?"
최미나의 대답은 차가웠다. 당연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문수 본인조차 알 수 없었지만, 마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난 너 죽일 생각 없어. 근데 죽일 거야."
말을 뱉은 직후 문수의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온 자신의 모든 선택이 후회되는 기분과 함께 가슴 한편을 누군가 주먹으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보안팀 부르기 전에 꺼져."
문수의 어깨를 스쳐 미나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는 미나는 까맣고 고급스러운 차량 조수석에 탔고, 그 옆엔 백발의 흰 노인이 있었다. 처음 보는 노인이었다. 문수를 노려보는 눈빛으로 보아 직감으로는 한경수 같았다. 그런데 미나가 한경수의 차를 왜 탔을까.
미나는 미소와 다르게 옷차림이 소박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에 낮은 굽의 신발을 신고 화장도 수수했다. 향수도 뿌리지 않았다. 샴푸냄새만 날 뿐이었다. 여기까지의 동선을 파악하고, 미나의 취향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문수에게는 일단 첫 단추는 꿰맨 것이었다.
실행은 그다음 단계다.
오피스텔로 돌아온 문수는 생각에 잠겼다. 대화도 실패했고, 미나를 따라다니는 노인도 있으며, 죽이지 않고 없애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문수는 이상하게 미나가 자꾸 생각났다. 털 끝 하나 다치게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 차량 옆에 앉은 백발의 노인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맘 같아서는 백발의 노인네를 죽이고 싶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뉴스에서는 아직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말 뿐이었다. 정말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건지, 최미소가 손을 쓰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문수에겐 잘 된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거니까.
송재식이라는 경찰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며 송재식의 의견은 매몰되고 있었다. 아마 예전에 사고를 크게 친 모양이다. 인명사고까지 낸 경찰을 시골 파출소로 보내는 거면 거의 그만두라고 등 떠미는 건데, 끝까지 버티는 걸 보면 송재식에겐 지키고 유지해야 할 무언가가 있나 보다. 가족이라든가, 뭐 그런 신파.
한동안 최미나, 한경수, 송재식, 그리고 최미소까지 정보를 종합해서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은 문수에게 아주 좋은 시나리오가 생각났다. 살릴 사람, 죽일 사람. 그리고 골릴 사람.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 문수는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목적지는 고 김채환 작가의 집이었다.
문수는 그곳에서 한경수부터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수사 중이라는 노란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고, 구경하는 사람과 수사 중인 경찰들이 많아 누가 한경수인지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하, 이렇게 첫 계획부터 힘이 들면 쓰나. 정신없는 상황에서 문수의 눈에 그때 그 검은 고급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한경수는 이 근처에 있다.
문수는 두리번거렸다. 세 번쯤 탐색했을 때,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백발의 노인 한 명이 서 있었다.
한경수였다.
한경수 또한 문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문수는 한경수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저 찾으시죠? 저도 선생님 찾으러 왔어요."
"여기서 다시 볼 줄 알았네.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 해야 할 게 많은 것 같은데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