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 이에게 믿음을 맡기는 일
나는 21살부터 갑자기 카페인을 먹으면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손발이 저리고, 심장이 마치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을 앞둔 것 처럼 두근두근 거리고 그날 잠은 포기해야 한다.
어린 마음에 멋도 모르고 내과도 찾아간 적 있지마 물을 마시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내가 34살이기에 그 사이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한 6-7년 전부터 스타벅스의 디카페인을 필두로 카페에서도 드디어 에스프레소가 들어간 메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제로콜라도 갖춰지게 되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제로음료만 마시고 있다.
문득 디카페인 커피와 제로 음료를 주문하는 일은 처음보는 상대에게 나의 약점을 공개하고 엄청난 믿음을 맡기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새 죽고 죽이고 계락이 판치는 드라마와 소설을 많이 봐서일까?
하지만 나에게 만약 카페인이 들은 일반 커피를 준다면 그것은 나의 하루를 죽이는 것과 같다. 요새는 초콜릿이나 그냥 콜라를 먹어도 가슴이 두근대곤 한다. 다행히 콜라도 디카페인 제로 칼로리가 나와서 참 감사하다.
어떤 카페에서는 친절히 디카페인 표시를 붙여주거나 원두 정보가 담긴 종이를 주기도 하지만, 그냥 커피만 나와있을 때 조금의 의심도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흔히 카페의 주문 풍경을 지켜보고 있자면, 재차재차 "이거 디카페인 맞죠?" 라던가 디카페인 원두로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손님을 본 적은 없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남을 잘 믿는 순진한 구석이 많은 존재인 것 같다. 당뇨환자에게 제로콜라인지 아닌지는 꽤나 생명이 걸린 일일 수 있는 걸 생각하며, 바빠보이는 아르바이트 생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 또한 영화관 알바를 할 때, 바빠도 그냥 당연하게 제로콜라로 잘 따랐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양심을 거슬리는 나쁜 일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정말 별 거 아니지만, 일상에서 디카페인러로 살아가며 든 생각을 공유해 봅니다.
여러분은 당신 앞의 커피가 당신이 주문한 커피라고 확신하나요? (우하하 왠지 삶에 긴장감을 드리고 싶네요)
그럼 이만.
눈 앞의 음료가 사약이 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