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핵심 부동산 답사기 ⑤] 재건축 핫플 방배동 이야기
언론에서는 방배동을 전통적인 부촌이라 말하지만, 막상 실제로 가보면 '여기가 부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서래마을 동광단지 등 수백평에 달하는 고급빌라와 단독주택도 있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거대한 소형 빌라들이 빈틈없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방배동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요. 1970년대 강남 개발과정부터 8090 전성기를 거쳐 재건축 메가로 급부상하는 현재까지 재미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방배동 이름의 유래
방배라는 이름은 크게 두 가지 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주고 한강 남쪽으로 내려가 등지고 살았다는 설, 우면산을 등지고 있다고 해서 그리 불렀다는 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도심과 등지고 사는 마을'인 서래마을을 떠올리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방배동이 개발되기 시작한 때는 1969년 12월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개통한 이후입니다. 70년대 초반 강남 도로망이 정비되면서 간척지나 너른 땅인 압구정 반포 도곡 대치 등에는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건설됐고, 언덕 비율이 높은 학동 논현 방배 서초 등에는 단독주택과 연립이 들어섰습니다.
지금이야 재건축 아파트가 최고라지만, 당지만 해도 압구정을 제외한 강남 아파트는 대부분 서민·중산층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선호했죠.
지금 33평(84㎡)이 40억원에 육박하는 반포주공아파트도 대부분 10평대인데 반해 방배·반포동 단독주택의 경우 큰 곳은 100평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저가에 땅을 사서 단독주택을 짓고 파는 소위 '집장사'가 붐을 이뤘고, 방배동부터 반포 논현동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단독주택 밀집구역이 형성됐습니다.
7080 방배동의 전성기
반포주공1단지와 반포천을 사이에 둔 방배본동에 강남 최초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1975년 준공한 방배삼호1차 아파트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듬해에는 북쪽에 있는 삼호 2차·3차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이들 아파트 모두 재건축 연한을 훨씬 초과한 50년이 넘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978년에는 아파트 서쪽에 전설적인 카페 '장미의 숲'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필두로 방배동 카페골목이 형성되면서 이곳은 연예인, 정부 고위 관료, 기업가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강남개발 당시 정부가 강북에 위락시설 신규허가를 제한했기에 각종 유흥업소들이 대거 강남으로 이전했고, 압구정 신사와 함께 반포 카페골목도 신흥 유흥상권으로 떠올랐습니다.
80년대 전성기 시절에는 코미디언 주병진 씨가 운영했던 '제임스 딘'을 비롯해 여러 카페들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성황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유흥업소들이 난립하고, 1992년 반포천 범람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합니다.
이후 방배동 카페거리는 현재 일반적인 빌라촌에서 볼 수 있는 맛집골목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로 반짝 떠올랐다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몰락하는 OO길의 흥망성쇠가 30년 전에 이미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8090 서래마을의 등장
방배동을 확실하게 부촌으로 인식시킨 동네는 반포4동과 방배본동 경계에 있는 서래마을입니다.
서래마을은 1925년 홍수로 반포에 살던 주민들이 지대가 높은 곳을 찾아 이주하면서 형성됐다고 합니다. 강남개발 당시 기존 주민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기에 개발 당시 바람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법이죠.
1986년 효성빌라를 시작으로 서래마을 일대는 고급 빌라촌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남 중심업무지구와 서초동 법원이 가깝고, 주민 외에는 접근성이 떨어져 사생활 보호에 유리하고, 서리풀공원 등과 맞닿아 전원생활 느낌까지 있는 만큼 진짜 부자들에게 딱 맞는 입지였습니다.
이후 서래마을에는 주요 기업 총수, 톱스타급 연예인, 정부 고위 관료들이 잇따라 터를 잡았습니다. 덕분에 한때 가구당 연평균 소득에서 반포4동이 1위, 방배본동은 10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985년 프랑스학교가 서래마을로 이전한 것도 부촌 이미지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까르푸, 르노자동차 등의 프랑스 기업 주재원과 임원들이 많다 보니 이국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들을 겨냥한 '부동산 렌트'가 이 지역의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은마아파트 35평이 2억 정도 할 때, 서래마을 100평 빌라가 10억이 훌쩍 넘게 거래됐으니 압구정을 제외하고 강남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지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 경쟁지역의 급성장
2000년대에 접어들며 강남은 재건축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반포, 도곡, 대치, 잠실을 비롯해 '개도 포기했다'는 개포까지 재건축에 속속 뛰어들었습니다.
윗동네인 반포동의 경우 2009년 준공한 반포자이, 반포래미안퍼스티지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작은 평수는 물론 60평 이상의 대형평수도 상당수 분양했기에 방배동의 많은 부유층이 반포동으로 이동했습니다.
동시에 논현, 청담동의 지가가 오르면서 기존 주택과 연립을 재건축한 최고급 빌라들이 들어서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면 방배동의 분위기는 180도 달랐습니다. 빌라에 대한 선호도 하락, 노후에 따른 수리부담,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저조, 1종 주거지역으로 개발제한 등으로 인해 주변지역 대비 투자가치가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에 동광단지 등 일부 최고급 빌라와 재건축 예정지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기존 주택을 헐고 연립을 지어 팔거나 최상층에 거주하며 세를 받는 식으로 빠르게 수익화하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서래마을' 이미지는 여기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방배 재건축 1만세대
찾아보니 2000년대 방배동 재건축 예정지의 모습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포, 개포 등과 비슷한 시기에 재건축 움직임이 시작됐으니 그만큼 사업이 지지부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상지 대부분 단독주택과 소규모 연립이라 협상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이는 사업성이 아주 높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서리풀터널이 2019년 개통하면서 강남과의 접근성도 크게 좋아졌습니다. 재건축구역 중 5·6·13·14구역은 초과이익환수제까지 피해 사업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비교적 소규모라 사업진행이 빨랐던 2018년 경남아파트를 재건축한 방배아트자이(353세대)가 입주했고, 2021년에는 방배그랑자이(758세대)가 입주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재건축 사업지는 5·6·7·13·14·15구역 등 6곳, 방배 삼익·신동아·삼호(1·2차, 10·11동), 신삼호(삼호4차) 4개 단지를 더해 10개 지역입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26일부터 청약을 앞둔 디에이치 방배입니다. 이수역과 내방역 사이에 위치한 디에이치 방배는 29개동, 전용면적 59~175㎡, 지하 3층~지상 33층 높이의 아파트 3065가구로 조성됩니다. 이중 일반분양만 1244세대에 달합니다.
현대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적용하는 방배5구역은 실거주 의무가 없고,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당첨되면 84㎡기준(약 22억원) 5억원 가량의 시세차익(방배그랑자이와 비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올 상반기 청약시장을 흔들었던 '강남 로또청약'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디에이치 방배의 견본주택 예약은 현재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모델하우스에 방문하지 않아도 준공 후 느낌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디에이치 방배의 단지배치도를 보면 올해 입주한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단지 가운데 도로를 배치해 획지를 두 개로 나누는 방식, 수영장·볼링장을 비롯한 커뮤니티, 외관 및 상가 배치 등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설계 외적인 부분인 초·중학교 위치, 언덕유무, 주변 환경 등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므로 염두해야 합니다.
디에이치 방배에 큰 관심이 있는 분들은 주말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와 인근에 있는 '디에이치' 브랜드를 처음 적용한 아파트인 디에이치아너힐즈를 방문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외에도 방배6구역을 재건축하는 래미안 원페를라, 방배삼익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아크로 리츠카운티 등의 청약이 예정된 만큼, 한동안 방배동은 강남 신축 입성을 노리는 투자자라면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