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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Nov 20. 2023

미움에서 해방되기_나, 그래도 다시

feat. 눈사람

사람들은 꽤 나를 좋아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둥근 얼굴과 제법 오뚝한 코. 작은 눈과 통통한 몸. 그리고 그에 비해 가녀린 팔다리도.     

그들은 나를 귀여워하기도 하고 어떨 땐 사랑스러워하기도 했다.     

다정한 눈빛, 따뜻한 웃음, 부드러운 손길. 나는 그런 것들이 좋았다. 세상은 이렇게 아늑하고 다정한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당신을 만났다.     

당신.

당신은 나를 산산이 부서뜨렸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누구도 나쁘게 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내 몸에 발길질을 하고 얼굴에는 주먹질을 했다.      

온기로만 가득한 줄 알았던 세상에 당신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짓밟히고 무너져 내렸고, 부서진 나의 결정들은 깜깜한 밤거리에 흩날렸다. 바닥에 흐르는 것은 눈물인지 무엇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벌써 지난겨울의 일이다.     

지금 나의 결정들은 이곳저곳을 유랑하고 있다. 얼었다 녹았다, 흘렀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조금씩이지만 단단해져 가고 있다.     

계절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느낀다. 적당한 때가 되면 나의 결정들은 다시 만나 조금씩 커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단단하게 다시 일어설 것이다.     



당신.

당신 같은 것이 또다시 나타나 나를 부술 작정으로 달려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다시 부서지더라도 괜찮아. 난 더 단단해지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다정한 눈빛, 따뜻한 웃음, 부드러운 손길. 나는 아늑하고 다정한 이 세상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누군가 다시 나를 산산이 부서뜨린다 해도.     



그래도 다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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