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물끄러미 자기 손을 바라보는) 종이에 손 베어 본 적 있죠? 순식간에 따끔- 하고 서늘한 느낌이 지나가면 손가락에 어느새 피가 맺히잖아요. 상처가 그런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순식간에 베여버리는 거예요. 어떤 땐 얕게, 어떨 땐 저 심장까지.
B: (바라보는)
A: 아파요. 그래서 일단정지. 움직일 수가 없어요 깊게 다쳤을수록 더 오래. (주먹을 꽉 움켜쥐는)너무 아프니까.
B: (문득) 손가락 베이고 나면 며칠 동안 쓰라리지 않아요? 잘못 스치기라도 하면. (몸서리치며)으우.
A: 맞아요. 그래서 조심조심해야 하고, 신경 쓰여요. 잘못 건드리면 더 벌어지니까. 이제는 다 아문 줄 알았는데 불현듯 툭- 하고 다시 벌어질 때도 있고.
B: 어떤 땐 처음 베였을 때보다 더 아퍼.
A: 무서울 때도 있어요. 이 상처, 평생 낫질 않으면 어떡하나. 겁이 덜컥 들어서.
B: 우리 몽이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네. (무릎 위 잠든 강아지를 쓰다듬는다.)다친 데도 다 아물고 시간도 꽤 흘렀는데 한동안 많이 힘들었지?
A: ..난 니가 꼭 나 같았어.
A와 B, 말없이 고요한
A: (두 손을 만지작 거리며)사실, 오늘 상처가 한번 터졌었어요.
B: 알아요.
A: 오래전 상처라 이제는 흔적도 희미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보같이 다시 어린애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B: (보는)
A: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넘어지면 여전히 아프고, 일어나기는 여전히 힘겨워요.
B: 그건 바보 같은 게 아니야. 깜깜한 길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게 왜 바보 같은 일이에요. 다친 데는 쓰라리고 앞이 안 보이는데 다시 일어나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게 얼마나.. 귀한 걸음인데.
A: (약간 놀라는 미소)..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나약하다고 자책만 했는데.
B: 너무 다그치지 마요. 얼마나 애썼어요- 여기까지 한걸음 한 걸음.
A와 B, 말없이 고요한
A: 그러게요. (물끄러미 손을 바라보다)나 애썼구나.
B: 애썼어요.(미소짓는)
A와 B, 말없이 고요한 그러나 조금은 편안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