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온기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네, 저도 동의합니다. 거기다가 조금 더 보태면 사람은 ‘사람’으로 산다고도 생각해요. 책 <따뜻한 인간의 탄생>에서도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서로에게 의존해 왔으며, 이런 사회적 체온 조절 본능은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제가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봅니다. 따뜻한 체온을 나누고 있으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단 느낌과 함께 마음에 안정이 생겨요.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외로울 때가 있고, 내가 외로울 때마다 매번 누군가가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저의 외로움은 어디서 오고, 또 이 외로움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저는 제 외로움을 심심하다(초급) - 쓸쓸하다(중급) - 고독하다(고급) 이 세 단계로 탐구해 보았습니다.
[심심] 집순이인 제가 집에서 실컷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뒤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화면이 검은색으로 바뀔 때, 그 찰나에 느끼는 것이랄까요.
이때의 외로움은 딱히 누군가를 필요로 하진 않습니다. 다른 재미난 할 거리를 찾으면 되니까요. 유튜브가 지겨우면 영화를 보고, 영화 한 편이 다 끝나면 만화책이나 웹툰을 보고, 이것도 귀찮으면 노래나 라디오를 들어도 됩니다.
[쓸쓸] 함께할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가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에요. 멀리 사시는 부모님이 며칠 방문하고 떠나신 후 가족이 없는 집안에서 저는 쓸쓸함을 느껴요.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 연인의 빈자리를 느낄 때 저는 쓸쓸함을 느낍니다. 지금 보고 싶은 영화나 가고 싶은 식당을 같이 갈 친구가 없을 때도 쓸쓸해지지요. 이때의 외로움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이럴 땐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지금 당장 만나지 못한다면 전화 통화나 메신저도 좋은 방법이에요. 신기하게 목소리로도, 심지어는 텍스트로도 온기가 전달이 되거든요. 전화 통화로도 쓸쓸함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불특정 다수와 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혼자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셔도 그 공간에 누군가는 반드시 존재하거든요. 쓸쓸함이 심할 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봐도 도움이 돼요.
[고독] 고독은 누가 옆에 있던 없던 해소되지 않는 극강의 외로움이에요. 재미난 놀거리, 주변 사람, 주변의 모든 것을 모두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고독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이놈이 찾아오면 저는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질 못해요. 고독은 폭풍우처럼 제멋대로 저를 쥐고 흔듭니다.
고독은 억지로 헤어 나오려고 하면 안 돼요. 다른 재미난 할 거리를 찾아 애써 해 봐도 무력화되고 억지로 누군가를 옆에 붙잡아두어도 함께 있어도 외로운 상태가 되거든요. 고독은.. 그냥 맨몸으로 온전히 겪어야 합니다. 고독을 외면할 수 있는 건 잠시뿐. 한번 흔들려 부서져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온 정신을 내맡겨보세요.
어마무시한 공포감이 찾아오고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산산이 부서진 잔해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완전히 지나간 후에는 오로지 잔잔함만이 남을 거예요.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이던 순간을 지나면 내 주변 모든 것이 가치 있는 것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만 잘나서 존재할 수 없거든요.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요.
이렇게 저의 외로움을 심도 있게 탐구해 보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잔바람 같은 외로움에서 태풍 같은 외로움까지 수많은 흔들리는 순간을 마주하겠지만, 저는 외로움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또 사람으로 사니까요.
온기를 주고 또 받을 줄 아는 따뜻한 인간이 되고 싶은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