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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11. 2024

근심걱정에서 해방되기_가자, 망상 속으로!

*심(한) 심약자 주의

 미정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다가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집에 불 난 거 아냐?' 지나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요, 어디에 불났대 화재 소식을 접한 것도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미정이 초등학교 시절 때는 더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으레 집에 불이 났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돌아오는 길 중간즈음부터 줄달음쳐 뛰어온 적도 여러 번이었다. 물론 먼발치에서 눈에 들어오는 미정이네 집은 항살 멀쩡하기만 했다.


 미정의 어머니가 자주 깜빡깜빡하기는 했지만 가스불을 잊고 출타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미정의 평생 일가친척을 포함하여 느 누구의 집에도 작은 불씨하나 번진 적 없었지만 미정의 마음속에는 불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불난리만 하겠는가. 선 곳에서 묵게 되면 가스가 새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꿈꾸듯 황천길을 갈까, 창문이나 현관을 따고 도둑이 들면 어쩌나, 어느 날은 집이 그냥 폭삭 무너질까 봐 천장을 보고 누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미정의 세상은 근심걱정 투성이었다.


 미정은 자기 안위만 걱정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이를 걱정했다. 가족들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할까 기차가 탈선할까 걱정하고, 버스는 뒤집히거나 자동차는 추돌사고가 일어날까 봐 걱정했다. 근심의 씨앗은 한번 박히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미정은 불안을 가득 안고 전화를 걸어 가족들의 안위를 확인했다. 연락이라도 닿지 않으면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분명히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데도 머릿속으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미정을 무척이나 괴롭게 했다. 미정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도 걱정했지만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칠 위험을 늘 걱정했다. 그만큼 미정은 사랑하는 이가 많았다. 사랑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정을 보고 혹자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걱정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으로 치부하기에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미정이 제일 보기 힘들어하는 것은 각종 사건 사고를 전하는 뉴스였다. 인간 생의 덧없음과 나날이 늘어가는 흉악 범죄들은 미정을 언제든 불안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내 가족이 흉악 범죄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과속 차량이나 뺑소니 차량의 피해자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미정의 망상은 한 번 시작하면 적당히 끝내기가 어려웠다.


 미정이 가장 싫어하는 혹은 힘들어하는 본인의 특성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늘 근심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는 것.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미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아 졌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생각,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손 쓸 새도 없이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생각 자체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일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언니가 혹시 욕실에서 미끄러져 꼼짝없이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1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달려가거나, 혼자 사는 애인이 귀갓길 이후에 연락이 끊겨 차 사고라도 나지는 않았는지 한밤중에 택시를 타러 주섬주섬 외투를 껴입은 일도 있었다. 물론 둘 다 잠을 자거나 술이 취해서 연락이 되지 않은 것뿐이었지만 미정의 망상 속에서는 수만 가지 끔찍한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으므로 상대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전에는 근심 걱정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근심 걱정이 그 자체를 넘어 공포가 되어버리던 그 순간, 미정은 깨달았다. 근심 걱정이 자신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실체 없는 공포는 미정 주변을 언제든지 맴돌고 있었고 거울 속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미정은 생각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근심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말라죽겠어.'


  죽고 사는 문제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대비를 해 두고 그 이상은 염려하지 말리라, 미정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원칙을 정하니 삶이 한결 간결해졌다. 오히려 준비성이 더 철저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미정의 근심 걱정은 미정을 더욱 꼼꼼하고 조심성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었는데, 미정은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외출할 때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가스 밸브를 사용 후 바로 잠가 두며 길을 걸을 때는 사방을 잘 살피며 다니는 미정은 그런 사람이었다. 가족들에게 운전할 때는 조심히 다니라 급하다고 뛰어다니지 말라 당부하며, 골목길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차를 조심하고 집을 나갈 때는 콘센트 전원을 끄고 다녀야 한다 당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정의 그런 점이 미정과 주변 사람들을 지켜주었으리라.


 여전히 미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도한다. 자신이 사랑하고 아는 모든 사람이 오늘도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를. 그리고 오래오래 자신과 함께할 수 있기를 매일 바란다. 혹시 주변에 미정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말해주자.


 걱정해 줘서 고맙습니다, 당신도 오늘 건강하고 무사한 하루를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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