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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25. 2024

후회에서 해방되기_후회 하고 있나요,

이젠 앞을 향해 가세요.

 길지 않은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순간은 선택의 순간이었다.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조차 어려운 나에게 대학 입시, 취업, 결혼과 출산 같은 커다란 선택들은 그 앞에 선 나를 말 그대로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대부분 궁지에 몰릴 때까지 선택을 미루거나, 모르는 척 회피하거나, 어쩔 수 없이 떠밀리는 척 그냥 남들의 의견에 따라버리기도 했다. 선택의 결과는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결과가 나쁠 때 난 그 책임을 남들에게 미루기도 했다. 한심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랬다).


 그럴 때는 후회와 함께 자괴감이 찾아왔다.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온몸으로 맞아봐야 한다는 것을 예전의 나는 몰랐다. 예를 들어 결혼. 나는 그동안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포지션을 취하며 연애를 해왔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결혼이 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란 걸. 내가 진짜로 두려워했던 것은 결혼이 아니라 '불행한 결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선택의 순간마다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 그리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한다.', '안 한다.'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선택지는 이 두 가지로 명료해진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걱정이 많은 나는 각각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곤 했고, 최악의 장면을 상상해 그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나의 나약함은 그렇게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시간만 죽였다. 이제야 알겠다. 선택이 두려워 시간을 낭비한 것이야말로 진정 후회할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나쁜 결과'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를 더 감당하기 어려웠다. 탓할 대상을 기어코 찾아내고 말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자괴감이 차오른다. 더 이상은 자괴감 속에 잠겨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 나아지고 싶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여태껏 내가 선택의 순간들에 휘둘리며 살아왔지만 그 모든 선택의 결과들을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최소한 버티려고는 노력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아주 작은, 어떤 믿음이 생긴 건 그 때문이다.


 이제는 선택의 기로에서 내 마음이 어느 한쪽을 가리키면 그 방향을 최대한 믿어보려고 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내가 배운 것이 하나도 없지는 않을 테니. 앞으로는 스스로를 더 믿어보고 싶다.


 요즘은 무언가를 선택할 때 마음이 훨씬 더 간결해졌다. 물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 자부할 순 없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삶, 그런 삶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후회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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