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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18. 2024

그리움에서 해방되기_모든 것은 사라지고,

우리에게도 끝이 있음을 알지만

 이것은 그리움에 관한 글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이 그립다. 그래서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운 사람, 그리운 장소, 그리운 말, 그리운 순간 그리고 그리운 나. '그리움은 내가 한 때 가졌던 것을 다시는 갖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다시는' 갖지 못한다니. 나에게 이보다 끔찍한 말은 없었다. 이보다 두려운 말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영원한 순간은 없다. 영원한 사람도 없다. 내가 가졌던 것은, 또는 한때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이미 나를 떠났거나 내가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나를 떠나거나 내가 잃어버릴 것들 뿐이다.


 나는 이걸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넘쳐 온 얼굴을 적시고 앞섶까지 적셔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 그것들의 유한함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그만 아득해지고 마는 것이다. 나의 모든 집착은 여기서부터 왔다.


 나는 모든 것을 집착한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장소, 사랑이 오가는 말, 사랑의 순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 하지만 이 중에 무엇도 바뀌지 않는 것이 없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걸 안 순간은 내 나이 열 살 때였다.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모든 것을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 했다.


  첫 애인과 헤어지기를 고민하고 결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동안 내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한 인간이 나의 삶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그 다정한 음성을 들을 일도 없게 된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난 병 속의 사탕은 빼야 하지만 너무 많이 움켜쥐어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욕심쟁이처럼 굴었지만, 결국에는 사탕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그리고 또 사랑은) 사탕이 아니었고, 그것을 잃는 경험은 말로는 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2년을 내리 괴로워하고난 뒤 나는,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아서 가지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사랑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내 인생의 일부만 함께한 애인도 그럴진대 내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은 어떠랴. 내가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날은 나의 열 번째 생일날이었다. 모든 생명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순리라지만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잃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케이크를 사러 간 부모님을 기다리다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부모님이 돌아와 나를 달래주시고 눈물은 멈추었지만 그때의 공포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집 밖에 있을 때는 집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집 안에 있을 때는 나가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나는 엄마의 가늘어진 팔다리를 보며, 아빠의 굽어진 등을 보며 인간의 육신이 어찌 이리도 유약한 지 생각한다.


 언젠가 잃을 것을 안다면 한 순간이라도 놓칠 세라 모든 순간을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한다. 하지만 진리는 내 머릿속 한켠 가장 구석에만 자리하고 있을 뿐 나는 여전히 엄마와 말다툼을 하며 아빠를 원망한다. 지금 이 사람이 그리운 사람이 될 것이고, 지금 이곳이 그리운 장소가 될 것이며, 지금 나누는 이 대화와 체온이 나중에는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단지 기억으로만 간절히 더듬게 될 순간이라는 것을 이 순간의 나는 또 잊고 만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난 부모님의 얼굴에 새삼 늘어버린 주름들을 보고는 불현듯 다시 생의 유한함을 떠올리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한다. 나는 항상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고 추억했으며 회한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회한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영원히 짱짱할 것 같던 나의 부모님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으므로. 그래서 나는 사랑이 두렵다. 그를 잃게 되고 그리워할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기에.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사랑을 멈추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랑은 멈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랑은 그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사람이, 이 순간이 나를 떠나겠지만 나는 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움이 사랑에서 온다면 나는 그리움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모든 것은 부서지고 사라지며, 병들고 죽는 것을 알지만 그 유한함의 껍데기 속에 들어있는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은 무한함이다. 무한한 사랑이다. 유한함 속에서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무한한 무언가를 나는 믿기에 나는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 속에서 영원을 집착하는 대신, 내가 사라지더라도 나의 사랑은 이어지리라- 믿고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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