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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04. 2024

갈망에서 해방되기_소년과 오아시스下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때부터였어. 그는 오아시스를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네. 이제 그는 땅을 보며 걸어가기 시작했지. 그의 마음과 육신은 너무도 많이 지쳐버렸던 거야. 기다림과 목마름을 버텨냈던 몸은 힘없이 굽어지고, 반짝이던 눈빛은 생기를 잃었지. 하지만 오아시스는 여전히 그의 근처에서 맴도는 것 같았어. 그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 않아도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차마 바라볼 수는 없었다네.


 오아시스를 사로잡기만 하면, 도착만 한다면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성취를 얻고 마침내 스스로가 증명될 것 같은 기분. 그것이 그가 바라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이도 저도 상관이 없어졌다네. 발끝만 바라보며 그는 꾸역꾸역 걸어갔어.


 오아시스를 찾기 위한 여정, 그것은 영영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네. 여태껏 버티고 견뎌온 인생이 무의미하고, 자신은 사실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버리자 그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어.(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 비치적거리던 그의 머릿속은 아득해지고 무릎은 바닥으로 힘없이 꺾여버렸다네. 두 눈에서는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어.


 나그네여, 잠시 목을 축이시게. 괜찮다면 내 얘기를 들어보지 않겠는가?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어. 그가 고개를 들자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가진 노인 하나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노인은 주름을 더욱 겹겹이 그리며 미소 지었지.


 노인이시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물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습니다. 아마 이 물을 마신다 해도 제 갈증에 도움이 되진 않을 거예요.


 그러자 노인이 답했어.


 “그러한가? 하지만 이 물은 자네의 오아시스에서 온 것이라네.”


 “예?”


 “자네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 제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그 물음에 답을 주겠네.”


 “노인께서 답을 아십니까?”


 “내가 기다린 것이 바로 그거야.”


 “그렇다면 제게 알려주십시오. 일평생 찾던 것입니다.”


 노인은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보았지. 그리고 말했어.


 “자네가 찾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네.”


 “예?”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나 있지. 오아시스는 바로 자네 그 자체야. 자, 고개를 들어 둘러보게.”


 그는 어느샌가 눈물이 멎고 시야가 맑아졌다는 걸 알았어. 고개를 드니 초록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지. 비로소 깨달은 것은 두 무릎이 풀밭 위에 놓여 있다는 것, 그리고 일렁이는 물결 때문에 눈이 부시다는 것이었어. 그는 오아시스 한가운데 있었다네.


 “자네의 오아시스에서는 지금도 샘이 솟아나고 풀들이 자라나고 있지. 그것은 자네와 함께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야. 모든 사람이 곧 그의 오아시스라네. 그것을 모르는 이들만이 바깥을 바라보느라 자신이 오아시스 속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해. 그들에게 오아시스는 어디에도 없는 셈이지.”


 그는 뒤를 돌아보았어. 그가 돌아온 길을 바라보았지. 수많은 사건들과 수많은 만남들이 있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네. 수많은 오아시스들도 보였어.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나무들도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보였지. 그것들은 자체로 싱그럽고 푸르렀다네.


 노인이 말했어.


 “삶의 이유를 찾는다고 했나? 애초에 삶의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저 자네가 만나고 지나온 모든 것들이 그 이유가 되는 거지. 자네는 이 모든 것들을 누리려고 존재하는 것이라네. 그저 풀밭의 감촉을 느끼고 밀려왔다 떠나는 물결의 반짝임을 느끼게.”


소년은 한참을 고요한 물결을 바라보았어.


이윽고 두 손을 짚고 일어나 무릎을 터는 그의 육신은 다시 꼿꼿해지고 눈은 다시 반짝였다네. 소년이 말했어.


“저는 이제 더 이상 갈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네.



 나는 작지만 꼿꼿한 육신을 가진, 반짝이는 눈을 빛내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소년이자 노인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소년이자 노인이리라.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나그네여, 자네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답을 찾은 듯한 가뿐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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