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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Nov 20. 2017

파우치에 넣고 싶은 것

ep19.


그리지_쓰니랑




세상에 예쁜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관심 없는 사람은 있다.


나다.


나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라든지, 예쁜 제품이라든지, 귀여운 인형이라든지 또는 연휴만 되면 난리 나는 스타벅스 다이어리라든지. 남들에 비해서는 별로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다.


갖게 되면 소홀하게 관리할뿐더러 처음부터 갖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런 스타일이다. 물론 다이어리는 필요할 수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 11월이라 그런지 다이어리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는 카페가 딱 2개 있다. 다른 카페는 더 많이 걸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는 카페가 2개뿐이다. 그중 하나는 개인 카페지만 비싸고 맛도 쓴 커피. 또 다른 하나가 스타벅스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겠지. 이 곳 스타벅스에는 언제나 이 근처 모든 직장인들로 북적북적하다. 매번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게 되는 이 곳. 어차피 매번 가는 카페니까 e-Frequency 쿠폰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2번 먹어서 그런가. 세상 그렇게 빠르게 적립이 될 줄이야. 어느 순간 내 손에는 2018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함께 증정되는 파우치가 들려있었다.


코랄색의 다이어리와 파우치는 예뻤다. STARBUCKS+PANTONE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있다. 팬톤과 컬래버레이션을 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색이 예쁘긴 했다.


보자 다이어리는 어차피 필요하니까 내가 하나 갖고, 파우치는 애매하게 크네. 다이어리를 넣고 다니는 파우치인가 생리대 같은 것을 넣기에도 너무 크고, 화장품을 넣기에도 참 크다.


나중에 여행 다닐 때나 사용하면 좋겠지만 여행 언제 갈 수 있는 걸까...?


지석이가 예쁜 거 좋아하긴 하는데... 가만히 다이어리와 파우치를 바라보고 있자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그는 예쁜 거를 좋아한다. 주체가 뭐가 됐던지 간에 아기자기하고 예쁨을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예쁜 쓰레기. 그런 거 좋아한다.


그래서 줬다. 그는 내가 주는 건 뭐든지 다 좋아한다. 색이 예쁘다며 좋아하는 그를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여기에 뭐 넣고 다니는 게 좋을까?”


“미술 도구 같은 거 넣고 다녀”


“아 그럴까?”


“응 너 들고 다닐 거”



“들어가”



“들어가냐고?”


손에 받아 든 파우치를 요리저리 만져보던 그는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파우치를 내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파우치 지퍼를 열고 양 손으로 입구를 잡아 활짝 벌린 채 이를 앙 다물고 인상을 우악스럽게 구기며 전투적으로 달려왔다.



“너 들어가라고 여기”



씨익.


그의 달달한 멘트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양쪽으로 찢어진다. 날 바라보며 그가 씩 웃는다. 눈동자를 굴려 마주친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아마 내 얼굴도 같은 표정이겠지.




공기가 의심할 여지없이 차갑다. 패딩을 입어도, 털 달린 옷을 입어도, 털 자체를 입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옛날에는 잘 몰랐던 거 같은데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것만 같은 시간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시간의 속도는 똑같겠지? 그렇다면 앞으로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건가...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건가 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나 더 깨우치는 시기. 내 옆에는 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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