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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중년남자의 건강검진으로 얻은 깨우침

몸을 듣는다는 것은 삶을 마주하는 시간

by 낭만기술사

중년의 계절을 살고 있는 그는 매년 빠짐없이 병원을 찾았다. 달력 한 구석에 조용히 표시해둔 날짜, 마치 오래된 약속처럼 그는 그날이 오면 어김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종합검진.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물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병원을 자주 가세요?”

그럴 때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답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고, 속까지 건강하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내 안의 상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게 더 불안하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시경 중 위에서 작은 용종 하나를 발견했고, 별일 아닐 거라는 의사의 말과 함께 조직검사를 맡겼다. 그에게는 익숙한 일. 몇 해 전부터 해마다 한두 개씩은 떼어내는 일이 되풀이되었으니 말이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그는 불안 속에 파묻히는 대신 마음을 정리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감사한 일, 혹여 나쁘다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지.'


그는 알았다.

삶이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으며, 때론 예상치 못한 갈림길에서 방향을 묻는다. 중요한 것은 그때 당황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담담히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50대.

그는 이제 인생의 중턱에 와 있었다.

젊은 시절, 시간은 늘 모자랐다. 무언가에 쫓기듯 달리고,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나날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삶의 속도계를 한 칸 줄이며, 그는 가끔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가, 무엇을 지나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종합검진은 그에게 단순한 병원 방문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거울 앞에 선 자신과의 대화였다.


‘요즘, 잘 지냈니?’

‘무리는 없었니?’

‘혹시, 마음 깊은 곳에 숨기고 있는 건 없니?’


이런 물음들에 그는 매년 귀 기울였다.

말을 걸고, 대답을 듣고, 때론 침묵 속에서 중요한 신호를 읽었다.

건강검진이란 결국 ‘듣는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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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말수가 줄어들고, 신호는 작고 미세해진다는 것을.

때문에 그는 더 자주, 더 정성스럽게 자신을 살폈다.

이름하여 ‘경청’.

그가 병원에서 얻는 것은 단지 수치와 결과지가 아니라, 몸이 들려주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진짜 건강이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고 그는 믿었다.

오히려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매 순간 나를 돌보는 태도, 그리고 작지만 꾸준한 점검이 모여 만들어지는 ‘삶의 기술’이었다.


검진 결과가 좋으면 감사했고,

조금 나쁘다면 ‘몸이 보내는 SOS를 일찍 발견한 기회’일 뿐이었다.

그는 그 정도로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시간이 없어서요.”

주변에서는 늘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럴 때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검진은 두려움이 아니라 성찰이고, 염려가 아니라 책임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앞으로의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준비’였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권한다.

“몸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아끼는 방법이랍니다.”


창밖으로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는 어느 날,

검진 결과를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전화를 받았다.

걱정 대신 미소로, 불안 대신 평온으로.

그것이 그가 배운 중년의 태도였다.


삶은 조용히 속삭인다.

“잘 듣고 있니?”

그리고 그 물음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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