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시베리아에서 몰아닥친 한파로 거리가 꽁꽁 얼어붙은 그날도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학원에 갔다.
겨우 세수만 하고 나온 녀석들이 풍기는 호르몬 냄새와 여학생들의 화장품 냄새에 너는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포식자처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내게 멈추었을 때,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크네스, 넌 이미 나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너 때문에 나는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가고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볼 때는 물론 세수할 때도, 찬바람을 맞을 때조차도 나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너를 생각했다. 내 손가락은 너를 만지지 않고서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피딱지로 덮인 여드름 흉터들이 나날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런 얼굴로는 학원에 갈 수 없었다. 누나처럼 나도 과외를 시켜주던가, 아니면 이 모습으로는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엄마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형준아, 내일 피부과에 가 보자!”
엄마의 말이 나에게 마치 구원과도 같았다. 나는 그토록 절실하게 엄마의 말에 순종한 적이 없었다.
“네, 어머니!”
피부과에 갔을 때, 의사는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이 나이대에서는 대부분이 안드로겐이라는 남성 호르몬 증가가 원인이에요. 주로 프로피오니박테리움 아크네스 균이 염증을 일으키며 여드름이 발생하고 악화하는 것인데요.”
프로피오니박테리움 아크네스, 줄여서 P. 아크네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렇게 예쁜 이름의 네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의사는 사춘기 호르몬 증가가 피지 생성을 초래하고, 이 피지를 먹은 아크네스 균이 과하게 몸이 커지면서 모공을 막게 된다고 말했다.
의사는 내 얼굴을 스캔한 후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면포가 오래돼 화농성 여드름 상태로 변한 것 보이시죠? 다행히 고름이 찬 낭종 상태는 아니니까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 어차피 사춘기 여드름은 계속 생길 텐데요. 정말 치료해야 할까요?”
아니, 인제 와서 이런 말을 할 거면 엄마는 왜 피부과에 가자고 한 건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의사가 내 반응을 눈치채고 말했다.
“물론 어머니 말씀대로 이 시기에는 치료해도 또 생깁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흉터가 남을 위험이 있어서 치료받는 게 좋습니다. 여드름 흉터는 평생 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의사는 각종 여드름 화장품, 여드름 연고, 세안제, 필링 및 혈관 레이저 시술 등을 권했고 엄마는 치료비를 듣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째려보았다.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나도 아크네스, 너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일 뿐인 것을….
레이저 시술까지 받는 건 부담스러워 기본 치료만 하기로 하고 우리는 상담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