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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영 Oct 26. 2024

P.아크네스

4화

믿을 수 없었다. 피부만큼은 타고났다고 자부했는데, 중학교 때조차 여드름 하나 없던 내 얼굴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도대체 지난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특별히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게임을 하며 과자 조금 집어 먹은 것(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이 아닐 수도 있겠다)과 방학이라고 해서 샤워를 아주 조금 게을리한 것(또 생각해 보니 샤워를 삼, 사일씩 안 했던 것도 같다)외엔 그 어떤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러다 곧 좋아지리라고 생각했던 내 희망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무참히 깨졌다. 이제 양쪽 뺨에도 수없이 많은 딱딱한 분화구들이 생겨나더니 활화산처럼 시도 때도 없이 터지며 시뻘건 피와 누런 고름을 쏟아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드름 흉터 하나 없는 아빠, 엄마의 얼굴을 보더라도, 가끔 화장품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이마나 턱 주위에 하나둘 나는 뾰루지로 고민하는 누나를 보더라도,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난 부모님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다.

“왜 아빠와 엄마는 여드름 흉터 하나 없는데 나만 이런 거야?”

부모님은 그런 내 얼굴을 쓱 돌아보며 대답했다.

“어머, 네 나이 때는 다 그렇지 뭐. 호르몬 때문이야.”

“괜찮아. 크면 저절로 없어져. 손만 대지만 마. 흉터 남아.” 

부모님은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도 네 나이 때 등에 여드름이 엄청 많았어. 자고 일어나면 속옷에 피고름이 묻어 있었다니까. 성인이 되니까 저절로 다 없어졌어. 걱정하지 마, 괜찮아!”

“아빠는 등이지. 난 얼굴이라고! 그리고 난 하나도 안 괜찮아!”

내 울부짖음에도 부모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의 매서운 손바닥이 내 등에 내리꽂혔다. 엄마도 잔소리를 쏟아냈다. 

“세수나 열심히 해! 어젯밤에 몇 시까지 안 잔 거야? 새벽까지 또 게임 했지? 너도 이제 곧 고등학생이야. 정신 좀 차려!”


그렇다. 나도 이제 곧 고등학생이다. 그러니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여드름 정도는 해결하고 가야 정신도 차리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해도 내 말은 그저 마이동풍,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공허한 바람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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