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 동안 아이를 키워오면서 체력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나름 운동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나의 신체적, 정신적 피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있어서 조금 나아졌지만, 아이를 키우는 초반에는 서로 처음이다 보니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여유가 전혀 없었다. 신생아 때는 2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수유를 해야 해서 잠을 쪼개서 자느라 힘들었다. 이 외에도 트림도 시켜줘야 하고, 울며 보채는 걸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달래야 하는 것도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이 때는 아이가 가볍지만 목을 잘 가누지 못해서 온 몸, 특히 어깨에 많은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가끔씩 결리기도 하는데, 아내와 나는 서로 어깨를 주물러주며 육아 동반자의 역할을 해냈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점차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데 이때부터 부모의 체력 테스트가 시작된다. 아이를 들어다 놓고, 같이 기어 다니고, 안아주고 하다 보면 어느새 숨이 좀 찬다. 아이가 낮잠을 잘 때 같이 자지 않으면,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진정 체력 싸움이다. 요구사항도 많아져서 '이거 갖고 와라, 저거 갖고 와라, 날 안아라, 걸어가게 놔라'라고 말은 직접적으로 못 하지만, 울음과 행동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걷는 거 보조 맞추랴, 시키는 거 해주랴 아주 지치기 시작한다. 또 왜 이리도 자주 넘어지는지 한눈팔고 있으면 어느새 넘어져서 울고 있다. 그럼 또 헐레벌떡 달려가서 일으켜 세우고 안아준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아빠의 체력은 고갈되어, 아이가 잠들면 맥주 한잔 하고 자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와 함께 곤히 잠들어 버린다.
아이를 28개월 간 키워오다 보니, 나도 살아야 하기에 내 체력을 아끼면서도 아이의 체력을 방전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아이를 키울 계획이 있다거나, 신생아 또는 내 아이의 또래 정도의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있다면 참고하기를 바란다. 부모가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좀 더 여유롭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아이에게 향하는 말투나 손길에 정성을 갖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책감 갖지 말고 앞으로 소개할 전략들을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이 전략들은 보통 아이와 부모가 함께 놀 때의 상황에서 적용 가능하다.
1) 공놀이 또는 풍선놀이
아이가 공이나 풍선에 흥미가 있으면 아주 좋다. 가끔씩 아이가 공이나 풍선을 들고 와서 같이 놀자고 하는데, 이럴 때면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아주 지치게 만들 수 있다. 일단 나는 방구석 쪽에 위치한다. 그럼 아이가 공이나 풍선을 잘못 던지더라도 벽에 튕겨져 나와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잘 잡을 수 있다. 아이 쪽은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다. 처음엔 아이 가슴으로 정확히 던져주다가 점점 아이와는 먼 곳으로 실수한 척 던진다. 그럼 아이가 뛰어다니면서 공을 잡으러 다니는데, 그때 좀 쉬면 된다. 아이 쪽 공간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고, 아예 공이나 풍선을 들고 밖에 나가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다만, 중요한 건 내 위치가 얼마나 구석이냐이다. 가끔씩 운이 좋으면 아이가 풍선을 높게 던져서 혼자 받는 연습을 하기도 하는데, 그럼 나는 그냥 앉아서 "아구, 잘하네!"라고 추임새만 넣어주면, 아이는 신나서 계속한다.
2) 역할극
딸아이라면 역할극도 자주 하게 될 텐데, 이는 살짝 정적이라서 가만히 역할만 충실하면 아이의 체력이 그리 빠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건 요구 사항을 많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아빠가 맡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놀이를 할 때는 무조건 환자를 해야 한다. 그럼 누워있을 수도 있고, 의사나 간호사가 된 아이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수도 있다.
"선생님, 진찰해주세요!"
"약 좀 갖다 주세요, 물 좀 주세요, 밴드 붙여주세요"
이런 식으로 아이가 자주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요구 사항을 계속 말한다. 아이는 신나서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뭘 자꾸 가져와서 내 입에 넣거나, 내 몸에 붙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 놀이에서는 나는 무조건 아이를 맡고, 아이는 선생님을 맡는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선생님께 계속 요구하면 된다. 심지어 낮잠도 재워주는데, 이불을 끌고 와 덮어주고, 불도 꺼준다. 실제로 아이와 이런 식으로 놀다가 잠든 적도 있다.
3) 비눗방울 놀이
날씨만 잘 맞으면, 비눗방울 놀이는 아이의 체력을 빼는데 상당히 좋다. 야외로 나갔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자주 불어주면, 구비해 뒀던 비눗방울 총을 꺼낸다. 입으로 불어주거나손으로 휘젓는 비눗방울 놀이도 있는데, 이는 아빠가 놀아주다가 좀 지칠 수도 있기 때문에좀 돈을 들여서라도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비눗방울 총으로 구비해 놓는 게 좋다. 바람을 잘 느끼면서 바람이 어디서 불어서 어디 쪽으로 가는지 미리 알아놓고 자리를 잡는다. 바람이 불어 나가는 쪽이 넓은 공터여야 한다. 그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비눗방울 총을 누르면, 비눗방울이 바람을 타고 넓은 공터 쪽으로 퍼져 나간다. 그럼 아이는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한다. 하두 비눗방울이 넓게 퍼져나가니까 본인 다리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어떤 비눗방울을 잡으러 가야 할지 정신이 없다. 막 뛰어다니면서 비눗방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데, 난 가만히 바람이 부는 때에 맞춰 비눗방울 총만 쏴주기만 하면, 아이는 알아서 이리저리 잘도 뛰어다닌다.
4) 물놀이
여름엔 물놀이만 한 것이 없다. 아이가 물놀이만 다녀오면 곯아떨어진다. 나 같은 경우엔 아파트 단지 내에 작게 물놀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곳으로 자주 갔다. 이때 중요한 건 아빠가 물에 들어가서 아이와 함께 수영할 생각을 하면, 같이 곯아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힘을 쓰는 건 물총과 공이다. 물속에서 공놀이하는 것만큼 지치는 게 없다. 앞서 얘기한 공놀이 전략을 물속에서 똑같이 적용하면 된다. 아이는 더욱 빠르게 체력이 소진된다. 이 외에도 물총은 최대한 아빠가 사수한다. 그럼 아이가 다가왔을 때 쏴주기만 해도 신나서 도망간다. 그러다 다시 슬금슬금 오는데, 또 한 번씩 얼굴이나 몸에 쏴주면 신나서 소리 지르며 또 도망간다. 이렇게 물속에서 몇 번만 반복해도 아이는 금세 체력이 빠지는데, 언젠가는 놀다가 내 품에서 뻗어서 안고 집으로 들어와 재운 적도 있다.
5) 방방이
사실 계속 점프하는 것만큼 체력과 칼로리를 급속도로 소비하는 게 없다. 방방이는 바로 이러한 용도에 최적화되어있는데, 트램펄린이라고도 말한다. 한동안 아이가 방방이에 빠졌을 때는 집에 중고로 들여놔서 틈만 나면 뛰게 했다. 난 당연히 옆에서 추임새만 넣어줬다. 아이가 정말 신날 때는 연속으로 10분 이상 뛸 때도 있는데, 결국 지쳐서 방방이를 침대 삼아 누워버리기도 한다. 너무 힘든지 한 두 달 정도 잘 뛰고 놀다가 집에선 안 타길래 다시 중고로 팔아버렸다. 그래도 가끔씩 동네 공원 같은 데 가면 방방이가 설치된 곳이 있다. 그런 곳을 잘 알아두면 좋은데, 아이를 그 방향으로 걷도록 살짝 유도하면, 야외 방방이는 또 새로운 맛이라 실컷 뛰기 시작한다. 물론 난 가만히 옆에서 손을 올리며 아이에게 말한다. "여기까지도 뛸 수 있어?"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아이의 체력을 방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놀이를 살펴보았다. 이런 식으로 좀 더 현명하게 아빠의 체력을 관리하면서, 아이와 놀아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혼자 잘 논다면, 굳이 이런 전략들까지 쓸 필요가 없다. 우리 아이는 아직 겁이 많아서 놀이터에서 혼자 못 놀기에 이런 아빠의 생존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같이 올라가서, 미끄럼틀도 함께 내려와야 하고, 좁은 통로도 지나가야 하므로 내 체력이 급속도로 빠지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면 또는 부모가 아이의 체력을 따라가기 버겁다면, 내가 말한 놀이들을 자주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결국 이 모든 놀이 전략은 부모의 체력을 아낌으로써 놀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아이를 좀 더 여유롭게 대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