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9개월이 넘어가니 부쩍 말을 잘하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말들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럴 때마다가 신기하면서도 아이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요즘 들어 아이와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니까 귀에서 피가 나긴 하더라도, 즐겁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요즘엔 말을 잘하기 시작하니 슬슬 기저귀를 떼려고 노력 중이다.
"기저귀 안 찾으니까 쉬야 마려우면,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거야. 알겠지?"
"네, 아빠! 쉬 마려워요."
하지만 아이에게 팬티를 입히자마자 바닥과 함께 흥건하게 젖었다. 이미 아이가 말을 꺼내는 동시에 쉬를 한 것이다.
"다음부턴 쉬가 나오기 전에 아빠한테 쉬 마렵다고 하자. 알았지?"
"네, 미안해요. 아빠."
그러다 진짜로 변기에 앉아 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땐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고작 아이가 쉬야를 변기에 쌌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말이 오가면서 아이의 행동이 변화하는 게 새로운 재미로 다가온다.
반대로 말을 잘하기 시작하니까 가끔은 무서울 때도 있다. 주말 아침에 전 날 마신 술로 인해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 난 좀 늦잠을 자고 싶은 상태지만, 아이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가 없다. 단지 아이가 일어났을 때 아빠가 있으면, 회사를 안 가고 오늘은 하루종일 나와 놀아주는 날로 주말을 인식하고 있을 테다. 그럼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신나서 아빠에게 다가와 말한다.
"아빠, 일어나요. 아침이에요."
그 말을 듣고 난 뒤척이지만, 쉽게 깨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 아이는 못 들은 건가 싶어서 내 귀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아빠, 일어나! 해님!!"
부드럽게 말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확성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버럭 대니, 나는 눈을 뜰 수밖에 없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귀를 후비며 눈을 뜨자 아이는 웃고 있다. 그럼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누운 채로 확 안아버린다. 그럼 아이는 발버둥 치면서 말한다.
"아빠, 배고파."
나도 배고픈 걸 못 참는데, 아이가 배고픈 것은 더욱 참을 수가 없는 일이라서 벌떡 일어나 아이의 아침을 차리게 된다. 늦잠 자고 싶은 주말 아침에 아이의 기상나팔 소리는 무섭게 들리기도 하지만, 아빠의 책임감으로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이고 주말 오전에 아빠와 실컷 논다. 날씨가 좋으면 놀이터에 갈 때도 있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집이나 실내에서 활동한다. 보통은 아빠와 놀 때 몸으로 더 많이 놀아주는 편인데, 아무리 아빠가 체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두세 시간 정도 아이와 밀도 있게 놀아주면 지치기 시작한다. 시계를 힐끔 보니 11시가 넘어가고 있고, 좀만 더 버티면 아이가 점심 먹고 낮잠 잘 시간에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 지치니 이때부터는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레고 놀이, 그림 그리기, 찰흙 놀이 등을 한다. 그래도 워낙 요구하는 것도 많고, 반응을 해줘야 하므로 쉴 수는 없다. 아내가 차려준 점심을 함께 먹고, 1시가 넘어갈 때쯤 평소 같으면 곤히 낮잠을 잘 시간인데 아이는 눈을 말똥 하게 뜬 채로 나에게 말한다.
"아빠, 이제 뭐 하고 놀아요?"
당황한 나는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애써 침착하게 아이에게 답한다.
"어...? 이제 우리 낮잠 자기 놀이할까?"
"싫어. 더 놀 거야!"
이 단호한 아이의 말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정말 안 잘 생각인 건지 아이의 표정을 살핀다. 표정까지도 완벽하게 단호한 모습을 보면 정말 무섭기도 하다. 그럼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아이의 체력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사람의 노화는 특정 시점에 급격하게 일어난다는데,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닥친 것 같은데...'
'아이가 날 말려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보다 못한 천사 같은 아내가 아이와 좀 놀아주겠다고 자처하고, 안방에 들어거서 눈 좀 붙이라고 말해준다. 도저히 내 몰골을 그냥 볼 수는 없었던 듯싶다. 그럼 나는 아이 몰래 잽싸게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꿀 같은 낮잠을 청한다. 아이와 놀아주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땐 정말 회사에 있는 게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어서 그런가 회사에서 일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꿀 같은 주말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이도 결국 잠에 못 이겨 자고 있다.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개인 시간을 좀 갖는다. 잠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가 뒤척거리기 시작하는 데 그때마다 숨죽이며 아이의 움직임을 살핀다. 더 잘 때도 있지만 어차피 최대 두 시간이다. 빠르면 30분만 자고 일어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도 아이는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되어 있다. 일어나면 그때부터 다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있다.
"아빠랑 할래!"
아이의 이 말은 무서우면서도 기분 좋은 양가의 감정을 갖게 된다. 뭘 하든지 아빠랑 하겠다고 아이가 당당하게 말하는데, 그럼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해줄 수밖에 없다.
생선 가시를 바를 때도 "아빠가 먹여줘!"
엄마가 놀자고 할 때도 "아빠랑 놀래!"
할머니가 놀이터 가자고 해도 "아빠랑 갈래!"
목욕 누구랑 할까라고 물어도 "아빠랑 할래!"
뭔가 아이가 아빠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기도 한데, 체력적으로 후달릴 때는 좀 엄마나 다른 사람들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단호한 아이의 말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좀비처럼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 주말이니까 아빠랑 실컷 놀고 싶겠지...'
'아빠가 그렇게 좋으면, 숨 돌릴 시간 좀 줄래?'
그래도 아이의 이런 무서운 말들을 한 번에 이겨내게 하는 아이의 말로 인해 나는 또 힘을 내게 된다. 최근에 아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나는 흐뭇하게 웃었지만, 아내는 아이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잘못 들었나 싶어서 거꾸로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가 더 좋아!"
확실하면서도 명쾌한 아이의 대답에 나는 아내를 보며 승리에 도취한 듯 코를 벌렁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고,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가 나보다는 아이의 생활을 잘 챙기지만, 지금 시점의 아이는 잘 놀아주는 아빠를 더욱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도 아이에게 직접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는 말을 들으니,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무서운 말들을 해도, 아빠는 세상에서 똥이가 제일 좋아'
아무리 육아의 대부분의 시간들이 지치고 힘들어도, 아이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이게 바로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묘미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