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드디어 30개월이 되었다. 키우는 동안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조금은 천천히 컸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신생아 때보단 키울 만 해졌고, 가장 귀여운 이 시기를 내 눈에 오래 담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육아가 벅찰 때가 꽤 있긴 하다. 특히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이 3일 이상으로 길어질 때 함께 하루종일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상당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때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로 인한 피로도가 극에 달할 때 퇴근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다. 회사는 퇴근이지만 집으로 가는 또 다른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직장인들이 투잡이나 부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직장인들의 육아도 투잡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 돈을 벌기보다는 행복을 버는 투잡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육아를 하게 되면, 스스로 굉장히 지치기 때문에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나오게 된다. 나도 30개월 아이를 키워오면서 물론 보람과 행복을 더 많이 느끼지만, 가끔은 나의 자기 방어적 태도로 인해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죄책감은 결국 후회로 남게 되는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가슴이 찌르르해지는 느낌이 든다. 딸아이가 30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육아를 하는 동안 죄책감이 들었던 때를 상기해보기로 했다. 아빠가 처음이지만, 앞으로 좀 더 성숙한 육아를 하기 위해서라고 보면 되겠다.
아이에게 화낼 때
그러면 안 되지만 전반적으로 지쳐있을 때 아이의 떼를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니까 아빠가 어떤 상황인지 인지할 수 없다. 그저 하던 데로 필요한 요구사항을 표현할 뿐인 것이다. 나는 나대로 그 힘듦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에게 화를 낸다. 보통은 이런 식이다.
"아빠 이제 힘들어..."
그래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아, 한 번 더!"
처음엔 받아들이다가 아이의 한 번이 세 번, 네 번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도 폭발한다.
"아빠가 그만하자고 했지!"
이렇게 소리쳐서 말하면, 아이는 움찔하며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는 뒤늦게 울음을 터뜨리지만 나는 모른 체한다. 거의 내가 아이에게 화냈던 일들이 이런 상황이었는데, 아이의 떼를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 때 큰 소리를 쳤던 듯싶다. 시간이 좀 지나거나, 아이가 울며 매달릴 때 화를 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면서 미안해진다. 게다가 아이가 가끔 "아빠, 화났어?"라고 눈치 보며 엄마에게 말할 때가 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 아이의 떼가 겹치면 내 마음속의 평화가 사라진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내에게 말을 해서 육아를 좀 쉬면서 아빠만의 시간을 잠시라도 갖도록 해야지 부정적 태도가 아이에게 전가되지 않을 수 있을 듯싶다.
아이에게 TV 틀어줄 때
아이가 먼저 요구할 때도 있는데, 육아를 하며 스스로 좀 쉬고 싶을 때 아이에게 TV를 보도록 먼저 유도한 적이 있다. 우리 딸은 혼자 노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아빠가 '놀이 메이트' 역할을 해준다. 아이가 놀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몰래 빠져나가서 쉬려고 소파에 누워도 귀신같이 눈치채고 찾아와 같이 놀자고 엉겨 붙는다. 그렇게 몇 번 실랑이를 벌이면, 나도 모르게 리모컨에 손이 간다. 그럼 아이는 떼를 쓰다 말고 자기 의자에 앉아 집중하며 화면을 쳐다본다. 나는 아이가 오래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이에게 묻는다.
"뭐 보고 싶어?"
아이는 화면을 응시하며 말한다.
"베이비버스!"
그럼 나는 바로 아이의 요구에 응해주고, 소파에 누워서 본격적으로 쉬기 시작한다. 근데 그 상황이 너무 편해서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하게 되는데, 한 시간이 넘어가면 슬슬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에게 살짝 떠본다.
"이제 그만 볼까?"
이렇게 물어오면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 본다고 말할 때도 있고, 너무 재밌으면 한 번 더 보겠다고 말한다. 그럼 나도 너무 편하기에 아이에게 타협을 하게 된다.
"그럼 딱 10분만 더 볼까?"
이렇게 묻지만 사실 내 마음은 그럼 딱 10분만 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다.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아이가 TV를 보는 날이면, 아이한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편안함을 위해서 아이를 TV 앞에 오래 두는 것에 죄책감이 들게 된다. 차라리 아이가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장난감(레고, 클레이 등)을 찾아서 많이 구비해 놓는 것이 좀 더 죄책감 없이 육아할 수 있는 전략이 될 것이다.
아이에게 군것질 줄 때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우동이나 생선 등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일 때는 별일 없지만, 편식만 하게 되면 아이의 성장과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 특히 채소류는 기겁을 한다. 먹으면 죽는 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한바탕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세 번만 먹자고 사정을 할 때도 있고 정 안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군것질로 유혹한다.
"딱 시금치 세 번만 먹으면, 아빠가 초콜릿 줄게."
그러면 아이가 억지로 먹을 때가 있는데, 약속을 했으니 초콜릿을 줄 수밖에 없다. 먹을 걸로 유혹하는 게 생각보다 아이에게 잘 통해서, 밥 먹을 때 외에도 상당히 많이 써먹게 되는 게 문제다. 편하게 아이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인데, 말을 잘 안 듣는 날이면 초콜릿과 까까의 유혹으로 아이가 거의 한 끼 식사를 할 정도로 먹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또 밥을 제대로 안 먹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면서 아빠로서 죄책감이 커진다.먹는 것으로 유혹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어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을 비타민 캔디나 짜 먹는 요거트처럼 좀 더 건강한 것으로 바꾼다면 조금 죄책감이 덜 해질 수 있을 듯싶다.
핸드폰 쳐다보며 영혼 없이 답할 때
아이와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서 놀아주다 보면, 처음엔 정성을 들여서 놀아준다. 인형극도 적극적으로 하고, 공놀이 등 아빠의 체력을 쓰는 활동들도 활발하게 하며 아이와 맞춰준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놀아주면 아빠는 지치기 시작하는데, 아이는 아직도 놀이에 엄청나게 빠져있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앞서했듯이 똑같이 놀아줄 것을 요구하는데 지친 아빠는 그만큼의 체력과 집중력이 없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아이와 하는 놀이는 대부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체력도 달리고 지겨워지면 슬슬 옆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보기 시작한다. 아이의 지속적인 요구는 기계적인 대답으로 변한다.
"아빠, 뭐 해? 빨리 곰인형 해줘!"
아이는 곰인형을 아빠한테 건네주며, 곰인형의 역할극을 해달라는 요구를 한다.그러면 지친 나는 건성으로 답한다.
"곰은 겨울잠을 좀 자야겠어! 안녕."
그래도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곰인형에게 말을 걸지만 곰인형은 드르렁 코를 골기만 할 뿐이고, 단답식 대답만 이따금 해줄 뿐이다. 내 눈은 핸드폰에 고정된 채로 말이다. 그러다 아이도 흥미가 떨어지는지 나한테 와서 내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함께 쳐다보며 말한다.
"아빠, 뭐 해?"
그러면 나도 머쓱해지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끄며 말한다.
"그냥, 책 보고 있었어."
그럼 아이는 뒹굴 뒹굴 구르며, 나를 보고 말한다.
"아빠, 심심해요. 뭐 하고 놀아요?"
나는 아이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고는 답한다.
"우리 낮잠 자기 놀이할까?"
아이는 칼 같이 답한다.
"싫어!"
아이의 대답에 실망한 나는 다시 핸드폰을 켜서 눈을 화면에 고정하고, 아이는 포기한 듯 혼자 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면 아이가 혼자 노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눈도 마주 지치 않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말을 거는 순간에 또다시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 지옥'이 시작될까 한동안 혼자 노는 아이를 쳐다보고만 있다. 그러다 아이가 아빠를 쳐다볼 때가 있는데 그때 눈을 마주치고 씩 웃어주면, 아이는 내게 달려온다. 나는 내가 핸드폰을 보는 동안에 아이는 혼자 놀면서도 아빠와 틈틈이 눈을 마주치려 했을 생각을 하니, 내게 온 아이를 더욱 꽉 안아주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빠도 성장하는 건 확실한 듯하다. 아이를 죄책감 없이 키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도 사람이고, 살다 보면 여유가 없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죄 없는 아이에게 전가시키는 건 문제가 되지만, 어느 정도 육아의 농도를 낮게 가져가는 건 장기적으로 부모와 아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죄책감은 피할 수 없는 부모의 감정이라고 보고, 그 죄책감을 견뎌내고 아이에게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