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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r 29. 2023

아빠가 체력이 좋아야 하는 이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을 걸!"

   일요일 아침. 모처럼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였다. 햇볕은 대낮에 놀기 좋을 정도로 땅을 따뜻하게 덥혔고, 바람은 좀 불었지만 미세먼지가 없어서 쾌적했다. 나는 아내 그리고 네 살 난 딸과 함께 근처 공원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봄이 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아내도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서 아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도 이에 발맞춰서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혔다. 아이도 우리가 분주히 움직이니까 들떠서 빨리 가고 재촉했다. 겨우 내내 실내에서만 주로 활동하다가 바깥으로 놀러 나가니까 설레어하는 것 같았다.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 기분이 들었다.


  차를 타고 10분 거리인 공원에 도착했다. 11시쯤 되었기에 이미 사람들 상당히 많았다. 다행히 주차할 공간많아서 금방 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아직 나뭇잎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풍성한 나뭇가지로 인해 햇빛을 반쯤 가리고 있는 적당한 풀밭에 돗자리를 깔았다. 아버지가 홈쇼핑 상술에 당하신 해먹도 가져와서 처음 개시해 보았다. 설치는 쉬웠지만 바닥 고정이 잘 안 되어서 내가 누우니 등이 바닥에 닿았다. 그래도 아이가 잘 노니까 본전은 찾은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강아지와 산책 나온 커플들, 아이들과 놀러 나온 가족들이 있었고, 공놀이와 연날리기, 비눗방울 놀이, 배드민턴,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매점으로 가 비눗방울과 독수리 연을 샀다. 아이와 아내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독수리 연을 실로 연결하고 있었다. 연 날리기는 나도 초등학교 이후로 해보지 않아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렸을 적 기억엔 연을 높이 들고 냅다 뛰니까 하늘 위로 연이 떴던 것 같아서 그냥 무턱대고 연을 들고뛰었다. 아이는 갑자기 아빠가 연을 들고뛰니까 비눗방울 놀이를 팽개치고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음엔 뛰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았는데, 연이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가지 않자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아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연이 왜 하늘 높이 올라가지 않냐고 나를 채근했다. 나는 다른 아빠들에게 지기 싫어서 더 열심히 뛰었다. 심장이 아파왔지만, 아이를 위해서 연을 어떻게든 높게 띄워야만 했다. 그러다가 바람이 잘 맞아서 하늘 높이 연이 올라갔을 때 나는 아이에게 연 얼레를 넘겨주었다. 아이는 신나서 실을 감았다 풀었다 했지만,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풀 밭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파란 하늘에 아이가 신나게 조종하는 연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빠로서의 몫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아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커피를 내게로 와서 건네주었다. 아메리카노였지만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아이가 조종하던 연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고, 또 해달라는 아이 덕분에 나는 한동안 거의 마라톤을 해야 했다. 나중에서야 가만히 서서 바람만으로도 연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직접 들고뛸 때 보다 연이 잘 뜨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체력이 너무나 떨어져 있었기에 최대한 서서 어떻게든 연을 띄우려고 노력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아저씨가 안쓰러웠는지 매점에서 5.500원 주고 산 연을 이리저리 손 봐주었다.


"연 꼬리가 뭉쳐서 꼬여 있으니까 잘 안 뜨는 거예요. 그리고 연의 무게 중심을 위 쪽으로 올려서 연이 눕게 만드는 게 좋아요."


너무나 감사해서 다시 여러 번 시도했지만, 이미 너덜너덜 해진 연과 내 체력 때문에 연은 다시금 하늘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도 기다리느라 지쳤는지 다른 곳으로 가 비눗방울 놀이를 다시 재개하였다. 나도 더 이상 못하겠어서 포기하고 돗자리로 와 앉아 쉬고 있는 찰나에 아이가 나에게로 뛰어와 말했다.


"아빠, 나도 저 자전거 타고 싶어!"



저 멀리 보니 2인용, 3인용, 6인용 자전거가 서로 어우러져 섞여 있었다. 나는 저 자전거까지 타면 힘들어서 코피가 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와 아내까지 포함하여 두 여인이 타고 싶어 하는 눈빛을 나는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것이 가장의 무게인가 싶었다. 자전거 대여하는 곳으로 가서 결국 3인용 자전거 하나를 빌렸다. 30분 타는데 만 이천 원이나 했었지만, 가격 대비 시간이 짧은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가운데에 앉히고 나와 아내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거의 없었지만 다시 근육을 쥐어 짜냈다. 그래도 아이가 너무나 즐거워하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아빠의 마음으로 페달을 멈추기는 어려웠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으니까 반납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졌다. 아이는 못내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빠, 나 내일 또 탈래!"


나는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아이에게 답했다.


"똥이야, 아빠는 내일 회사 가야 해서 다음에 또 타자."


이렇게 아이와의 극기훈련 같은 봄 나들이가 끝이 났다.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아이는 차에서 바로 뻗어버렸고, 나도 집에 도착하여 소파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나는 꾸준히 운동을 해왔음에도 아이와 놀아주기 위한 체력이 한참 모자라는 것을 느끼며, 어차피 아이를 낳을 거였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지금부터 두 시간은 자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다. 아이가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은 나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금방 일어나 "아빠, 놀아줘!"라고 말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품으며 난 깊은 낮잠에 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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