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우서우아빠 Dec 29. 2023

반년만에 10km 마라톤

오래간만에 온전히 '나'를 돌아보는 뜀박질이었다

2학기는 '등원 - 출근 - 퇴근- 하원- 육아-취침'의 연속이었다. 아기 재우면 밤 10시 반-11시라 운동하기 적합한 시간이 아닐뿐더러 그럴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뜨면 애기들 아침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옷 입히고 등원하느라 아침 운동을 기웃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오늘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내가 하루 먼저 방학을 시작했기에 오전 시간에 '나 홀로 집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등원시키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운동장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운동, 특히 달리기를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운동장에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칭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조금만 방심하면 곧 100kg를 넘길 정도로 몸이 비대해졌기 때문에 조그마한 부상이라도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10km를 뛰어보자고 마음을 먹고 조심스레 트랙에 발길을 옮겼다. 트랙 한 바퀴가 400m이니 25바퀴를 헷갈리지 않게 잘 세기만 하면 된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오롯이 '나'를 위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차가운 공기, 빠르진 않지만 규칙적인 발걸음,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4분의 4박자 소리 등을 온전하게 느끼며 마음껏 사색을 즐긴다. 2023년 잘한 일과 못한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교사로서, 아빠로서 한 해 했던 일들을 반추한다. 그저께 만든 미역국이 조금 짰던 것을 반성하기도 하고 지난주 부장회의 때 들었던 정보를 상기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2,3km 뛰고 있고 조심스럽게 15바퀴, 20바퀴까지 가봐야지라며 목표치를 늘려나간다.


또 하나의 달리기의 장점은 '겸손'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가는 순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섣불리 그들의 페이스를 의욕적으로 쫓다간 나만의 사이클이 순식간에 무너져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지경에 반드시 이르게 된다. 게다가 오늘은 실업팀 건각들과 함께 달리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분들은 적어도 같은 시간에 나보다 2배 이상 달리는 분들이다. 선수들의 패턴, 자기 관리, 주법 등을 곁눈질로 경험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대입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과 존경의 의미를 생활 속에서 체득할 수 있다.

결국 25바퀴를 다 돌고 가시적인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켜둔 달리기 어플을 확인한다. 9.46km보다 확실히 더 많이 달렸는데라는 생각을 뒤로하고 1시간 8분이라는 성적을 받아들인다. 지금껏 10km 마라톤을 수백 번 해오면서 1시간을 넘긴 적이 별로 없었는데 다소 아쉬웠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운동할 짬을 못 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새해에는 조금 더 잘 달려서 달리기를 통해 마음껏 사색하는 즐거움은 물론 건강한 몸과 마음까지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P.S 와 그럼 실업팀 선수들은 같은 시간에 20km를 넘게 뛴 거네. 대박.

작가의 이전글 매트매트 홈매트(feat. 다소지저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