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 Aug 14. 2019

아프니까 민원담당자다

어느 공공기관 워크숍 단상

며칠 전 부서 워크숍에서 기념비적인 명언이 탄생했다. 마무리 순서로 간부들의 격려사가 이어지던 때였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임원까지  누군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윽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던 그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라떼는 말이야”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우리 땐 더 힘들었으니 “너네는 행복한 줄 알라”는 취지의 장광설이 이어졌다. "감정노동은 공공기관 직원들의 숙명"이라는 이야기가 계속됐고, 길이 남겨질 희대의 명언이 탄생했을 때쯤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 같이 이렇게 외쳐야 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아프니까 민원담당자다~ 와~!!”    


물론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고, 동기 단톡방에서 “저게 임원이 할 소리야?”라고 욕하는  다였다.


어쩌면 그는 감정노동에 지친 우릴 위로해줬답시고 흡족한 기분으로 퇴근했을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원 현장에 있는 실무자 입장에선 왼쪽 뺨 맞고 집에 왔더니 오른쪽 뺨귀도 냅다 처맞은 기분이었다.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상처라도 덜 받는 것이 최선인 건 맞으니까.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상 민원업무는 피할 수 없고, 진상 민원인들이 한순간 개과천선해 우리의 인격을 존중해 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민원인들과 치고 박고 싸우는 실무자들이 서로 토닥일 때나 할 말이지, 임원이라는 사람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는 우리에게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사명감이라는 것의 실체는 이랬다. 다짜고짜 나더러 "개의 자식"이라 부르는 민원인을 마음 아픈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그런 이들을 다독여준다는 "보람"을 느끼는 것, 회사에서 투덜대지 말고 "퇴근하고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욕먹으면서 기뻐하라니 이게 말인지 똥인지 싶다가, 임원쯤 되니까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저러나 보다 납득해버렸다.




‘갑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비명은 아직까지 배부른 소리 취급받는다. 국민들 세금으로 따박따박 월급 받는 주제에 엄살 부리지 말라는 식이다. 민원인으로부터 쌍욕을 먹고, 성희롱을 당해도, 실제로 폭력을 당해도 그게 밥값 하는 거니까 넘어가라는 분위기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인격모독을 당한 공공기관 직원들 사례가 하루가 멀다고 올라온다. 4대보험공단, 서울교통공사, 한국소비자원, 한국전력, LH 등 민원 비중이 큰 회사에는 탈모가 왔거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직원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 취업 빙하기에 민원 스트레스를 못 버티고 퇴사하는 직원들도 수두룩하다.


공공기관이 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건 맞다. 그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민원에 불량하게 응대하거나 업무에 태만한 직원들 적절한 징계와 처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민원 과정과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폭언, 욕설, 협박, 공갈, 모욕, 인신공격 등의 방법으로 담당자를 사적으로 처벌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대부분의 악성민원은 기관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유별난 권리의식과 피해의식이 만나는 지점(“내가 누군 줄 알고 그 따위로 말해?”)에서 생겨난다. 그 결과 다치는 건 민원 담당자뿐이다. 담당자가 아무리 관련 법령과 규정을 지켜 최선을 다 해도 민원인들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킬 순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전망이 갖추어지는 추세지만, 공기관은 구조적으로 내부 직원보다 민원인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우리 기관의 임원 얘기로 시작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라고 말하는 대신, 기관 차원에서 직원보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이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감정노동이 이미 본인들의 일이 아닐뿐더러, 경영평가와 고객만족도 점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상위부처·국회·언론등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감정노동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는 몇 편이 될지 모르는 글을 빌어 공공기관 민원담당자들의 감정노동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이것은 반복되는 폭언에 닳고 닳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무생물이 되기 전에만 가능한 일이다. 민원인의 과반수 이상은 선량한 시민이고, 악성민원은 어느 일부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일부로 인해 상처 받는 직원들은 언제나 과반수 이상이다. 이 글이 지금도 감정노동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사용자 입장에서 직원들의 감정은 도구다. 고객만족도 점수를 높이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감정이란 노동자 자신이다. 나의 인격이고 나의 존엄성이다. 그 선을 침범하는 이들에게 단호히 말하고 싶다. 


그건 잘못이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