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와 삶 사이 어딘가

by 고라니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니 주변에 집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 몇 명은 결혼하면서, 몇 명은 아이를 낳을 즈음 집을 샀다. 청약에 당첨된 동기도 있고, 싱글인데도 고양이와 함께 살겠다며 집을 산 친구도 있다.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걸 포기했다는 의미다. 계약금과 중도금을 마련하기 위해 먹고 싶은 것과 입고 싶은 걸 참으며 살아왔을 텐데,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으려면 이제 인간관계와 문화생활까지 줄여야 한다.

작년 말 기준 서울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 8333만 원으로 10억 원에 가깝다. 10억 짜리 집을 산다고 딱 10억 만 드는 것도 아니다. 취등록세와 중개수수료, 수리비, 이사비 등을 합하면 수천만 원의 돈이 추가로 나간다. 거기에 앞으로 내야 할 대출 이자도 무시 못 한다.




물론 집을 사는(Buying) 건 의무가 아니다. 살(Living) 집은 전세나 월세로도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동료들이 집을 사기 위해 욕망을 절제하는 이유는 단지 이사 다니기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산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질까 불안해서다. 지난 10년을 가만히 돌아보니, 월급이 오르는 속도는 집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부동산 말고도 선택지는 많다. 회사 선배 중에는 이번 생에 집은 안 사겠다고 선언한 뒤 배당주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정기적으로 배당금을 받고, 그 돈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에 보탠다.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건 부동산과 마찬가지고,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똑같다.

회사에 “의”와 “식”으로는 그 선배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주” 하나를 포기했을 뿐인데 이렇게 삶의 수준이 달라지는구나 싶어서 신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못 한다. 이 역시 불안해서다.

집은 한번 사면 쉽게 팔지 못한다. 단기에 팔았을 때 세금이 무시무시할뿐더러, 사고파는 과정 자체가 복잡해서다. 그리고 실거주를 통해 주거의 효용을 누릴 수 있어서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기가 비교적 쉽다.


반면 주식은 매도 버튼만 누르면 쉽게 팔 수 있다. 시장에 일시적인 충격이 왔을 때 멘탈을 잡지 못하면 장기간 쌓은 시세차익을 금방 반납하기 쉽다. 변동성이 큰데 현금화까지 쉬우니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장기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결국, 보통의 평정심을 가진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부동산은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고, 퇴근 후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는 시간이 쌓이면,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생긴다. 그래서 다들 집을 살 땐 가격에 민감하지만, 막상 사고 난 후에는 둔감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직 까지는 집을 사서 후회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2년 전 집값이 폭락했을 땐 힘들었겠지만, 특별히 집값이 다시 오를 거라는 강한 믿음으로 버텼을 것 같진 않다. 그냥 살다 보니 집값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동네에 정도 들고 그러지 않았을까. 투자와 삶 사이 어딘가, 적당한 지점을 찾은 덕에 말이다.



논객닷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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