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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Feb 26. 2020

정시범 보다 오시범에 배울 게 더 많다

내가 군에서 현역으로 복무를 할 때 시범을 제일 많이 본 훈련은 아마도 총검술인 것 같다. 다른 훈련과 달리 총검술은 자세가 많기 때문에 자세별로 조교가 펼치는 시범을 보고 따라해야 하는데, 조교의 시범을 아무리 보고 따라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때 조교가 병사들 중의 누군가를 불러서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우리는 당연히 그 병사가 총검술을 잘하기 때문에 우리 앞에서 시범을 보이도록 하려고 불러냈을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병사는 총검술을 너무 못한다. 흔히 말하는 고문관이다. 그런데 조교는 왜 그 병사를 앞으로 불러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배우고 따라하면서 실력이 향상된다. 그런데 살다 보면 바른 방법을 보여주는 정시범 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방법을 보여주는 오시범이 더 머리에 잘 들어오고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사람의 심리가 그런가 보다. 정시범을 펼치면서 ‘이렇게 하라’고 하면 왠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자존심도 좀 상하는 것 같고, “내가 너 따까리냐?”라는 심정으로 괜히 따라 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잘못된 시범을 보여주면서 ‘이렇게는 하지 마라’라고 하면 웃으면서 “내가 설마 그렇게 못할 걸로 생각하는가?” 라는 우월심리가 있어서 그렇게는 안 하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잘 된 걸 보여주는 정시범 보다 잘못된 걸 보여주는 오시범이 오히려 교육효과가 더 큰 경우가 많다.


세 명이 걸어가면 그 중에 내 스승될 만한 사람이 한 명은 있다고 한다. 걸어가는 세 명 중의 한 명이 나 자신이니 결국 남은 두 명 중의 한 명이 내 스승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확률적으로 이분의 일.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못났나? 내가 세 명 중에서도 제일 낫지 못하고 두 번째 정도 밖에 안 된단 말인가?’ 나도 철이 덜 들었을 때까지는 아무리 공자님 말씀이라도 이건 너무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하지만 이제 철이 조금 들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세 살 어린이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는 말, 맞는 말이다. 이 말은 항상 ‘정시범만 필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시범이 더 훌륭한 시범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시범 보다 오시범이 더 교육효과가 좋으니 정시범을 보여주는 사람은 나보다 훌륭하니 배울 게 있고, 오시범을 보여주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보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느끼게 되니 그것 역시 나에게는 훌륭한 배움이다.


사업을 할 때는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읽고 익혀야 한다. 실패한 사람들의 일은 아무리 익혀도 의미가 없다. 축구에서 수비를 아무리 완벽하게 잘 해도 비기기만 할 뿐 이길 수는 없듯이, 실패한 사람들의 경험을 아무리 많이 배우고 익혀도 실패하지 않을 따름이지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일단 성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오시범도 정시범 만큼 교육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오시범도 자주 봐야 한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에도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기가 쉽지 않다. 성공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시간도 많고 또한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으로 많이 나오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밝히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 또는 부끄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은커녕 간단한 인터넷 칼럼 하나 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과장급 정도가 되면 이미 퇴직한 동료나 선후배들이 인사차 옛 직장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만약 당신이 영업 담당이라면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청탁성 만남을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어떤 만남이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거절하지 말고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각자 사정에 따라, 직장생활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억지로 그만두라고 하기 전까지는 끝까지 직장에서 버티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잘 들어보라. 단순히 사업이 잘 되니까 만족한다는 말을 하고 사업이 잘 안 되니까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사업하는 방식을 보면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 보인다. 과장급 정도 되면 앞에 있는 사람이 말을 하는 자세나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나 사업 스타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감을 잡지 않는가?


퇴직 후 만족하는 사람, 퇴직을 후회하는 사람, 구분하지 말고 만남의 기회가 오면 계속 만나라. 그리고 그들의 만남을 기록하라. ‘누구는 어떻게 해서 잘 나가고 있고, 누구는 어떻게 해서 힘들어 하고 있다’ 등의 방식으로 기록하라. 기록이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당신이 사업을 할 때 활용하라. 명심하라! 정시범도 가치가 있지만 오시범도 가치가 있다. 아니 사업을 처음 하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실패 사례가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성공하는 것 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점을 아무리 뒤져도 잘 나오지 않는 오시범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사업 초기 단계의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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