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 대하여
작년 겨울 무렵부터 꽤 긴 장편을 써야 해서 잠시 브런치스토리에서 멀어졌다.
물론 틈틈이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수는 있었지만, 심리적 압박 때문에 쓰기가 힘들었다.
고작 한 페이지가 안 되는 에세이인데도 불구하고 글이 써지지 않는 건, 아마도 슬럼프 때문인 것 같았다.
작가마다 슬럼프가 오는 시기나 상황이 각기 다르다.
작품을 한 번 히트시킨 이후로 압박감에 시달려서 다음 작품이 안 써지는 경우도 있을 거고, 오랫동안 사귀었던 연인과 헤어져서 도무지 글 쓸 힘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대박은커녕 소박조차 쳐보지 못한 데다가, 딱히 사귀는 사람이 없으므로 위의 경우로 인해 슬럼프가 올 일은 없었다.
나에게 슬럼프가 왔다면,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아마 여러 작가들이 경험해 봤겠지만, 공모전에서 아무 상도, 하다못해 맨 끄트머리 상조차도 받지 못했을 때의 그 처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누구한테도 공모전에 도전했다고 말을 안 했기에, 누구한테도 떨어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상처받은 날짐승처럼 혼자 동굴 속에 들어가서 곪은 상처를 핥다가 시간이 지나 상처가 조금 나으면 ‘다음번엔 잘 될 거야’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는 수밖에.
무엇보다 더 큰 상처가 되는 건 내가 글을 쓴 지 꽤 오래된 기성작가라는 점이다. 남들은 내 필명을 들어도 ‘그게 누구야?’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을지언정, 나 자신은 내가 얼마나 오래 글을 써왔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어디에다 말도 못 하고 홀로 슬퍼할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건 네이버, 카카오페이지와 같은 웹소설 플랫폼을 말한다. 웹소설 작가들은 대개 시놉시스와 1화부터 5화 정도의 심사 원고를 준비하고 출판사를 통해 웹소설 플랫폼에 자신의 글을 심사 넣는데, 한 달이 지난 후 심사에서 좌절하면 기가 팍 꺾이게 된다.
‘내 글이 그렇게 재미없나?’
‘심사에도 떨어지는데, 앞으로 글로 먹고살 수 있을까?’
‘그냥 이번에 확 절필해 버릴까? 나도 쿠팡이나 뛸까?’
정말 땅굴을 파고 자학모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에너지가 돌면 ‘그래. 다음번엔 더 좋은 기획안으로 플랫폼 심사하는 놈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겠어.’라고 외치며 다음 심사 원고를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면 다음 심사를 받기까지 반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마침내 출판사에 투고가 합격하고, 플랫폼의 심사가 합격해서 소설이 출간하더라도, 매출이 좋을지는 미지수다.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내심 기대했던 소설의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치면 그때도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소재로 썼잖아. 왜 내 소설만 평이 혹독해?’
‘이 정도로 인기 없다니. 난 정말 작가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소설 론칭이 다가 아닌 것이다. 운 좋게 소설을 론칭하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론칭한 다른 웹소설과 겨뤄서 이겨야 하니 정말로 괴롭다. 특히 실시간 랭킹, 일일 랭킹 등에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다른 소설과 자웅을 겨루는 걸 실시간 보고 있자니 너무 힘들다. 평이 안 좋은 소설은 론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인기 순위에서 뚝뚝 떨어지고 급기야는 순위권 저 밖으로 밀려나가 보이지도 않게 된다.
찾아보면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는 더 많이 있겠지만, 대충 내가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는 대충 저 위의 세 가지로 추릴 수 있겠다.
그리고 난, 지난 일 년 동안 위의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겪었다.
글을 쓴 지 오래됐음에도 일 년에 몇 번씩 열리는 공모전에 끈질기게 도전했고,
출판사에 열심히 투고도 했고, 플랫폼 심사를 받느라 부산을 떨었으며,
마침내 출간한 소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아 머리를 쥐어뜯어야만 했다.
작가는 언제나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이렇게 소제목을 짓고 나니 뭔가 잘못 쓴 느낌이다. ‘언제나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라는 말은 간혹 좋은 글을 쓰기도 한단 말이지 않은가.
현재 내 기준에 있어서 ‘좋은 글 = 작가 스스로도 만족하고 매출도 좋은 글’이다.
난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 글을 써본 적이 없으므로 차라리 소제목을 이렇게 정해야겠다.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