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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 Oct 23. 2024

여름휴가_09

잔뜩 흥분해서 나온 아이가 실망한다.

잔뜩 흥분해서 나온 아이가 실망한다. 날마다 물을 바꾼다는 주인의 말은 사실인 듯 풀장은 완벽하게 물이 빠져있다. 실망한 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나선다. 파랗게 페인팅 한 풀장에서 아이와 공놀이를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귀를 찢는 아이 울음소리에 하늘이 노래진다.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의 발아래 피가 흥건하다. 남편이 상처의 요인이 된 음료수 캔의 따개를 보여준다. 아이의 상처를 살피는 동안 주인이 뛰어나온다. 아이의 울음에 덩달아 눈물을 글썽이던 엄마가 쏘아붙인다. 

- 애들 노는 풀장에 안전이 이게 뭐에욧!

여전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주인이 나를 보며 말한다.

- 거보라니까요. 어떻게든 일은 생긴다고 했잖아요. 

엄마의 냉랭한 표정에도 주인은 흔들림 없이 의연하다. 

- 뭐, 어떻게든 또 해결이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엄마가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평소에 없던 공명심을 내세우는 동안, 아이를 달래던 남편이 말한다.

- 어머니. 그만 하십시오. 주인 잘못 아닙니다. 물 빠진 수영장에 들어간 우리 잘못입니다. 아쿠아 슈즈를 챙겨 신지 않아 발생한 일이고요. 

가족은, 어떤 상황이든 똘똘 뭉치게 된다는 걸 명언처럼 붙안고 사는 엄마 표정이 망연자실하다. 

- 뭐래. 쟤 애 아빠 맞아?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지금!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의 눈빛이 달라진 걸 나는 놓치지 않는다. 분명 어젯밤 이후, 표독함이 사라진 눈빛이다. 아니, 그건 내 생각뿐일지도 모른다. 단정적인 사고를 하는 엄마의 신념체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엄마가 원하는 것 너머의 바람이나 욕망하는 서사를 이해하는 것도. 어쨌거나 그동안 내보인 남편을 향한 환멸에는 딸을 위한다는 품위 있는 명제가 앞 세워져 있었으니까. 모르겠다. 깊이 생각하기에 날은 너무 덥고 아이가 다친 것 또한 지친다. 실없이 환한 웃음을 웃어 보이는 걸로 상황에 종지부를 찍듯 손을 든다. 지친 내 모습이 안쓰러운 걸까, 어정쩡 표정을 푼 엄마가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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