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정 Oct 23. 2024

여름휴가_10

휴가 마지막 날이다.

휴가 마지막 날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아이와 밖으로 나온다. 오랜 시간 물놀이를 즐긴 아이의 몸은 촉촉하고 보드랍다. 낮도 밤도 아닌 어정쩡한 미완의 시간.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이 희미해진다. 머지않아 깊은 수렁인양 느껴질 계곡도 희뿌연 색채로 남아 있다. 선셋 증후군,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놓기 좋은 시간이다. 문득 몰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석양이 지는 것에서 생겨났을 지도 모를 몰락이라는 말. 다친 발을 표 나게 저는 아이를 부축하듯 걷는다.

인기척에 놀란 걸까. 앞 발 두 개를 몸 앞으로 쭉 뻗어 스핑크스 자세로 엎드려 있던 개가 귀를 쫑긋 세우며 몸을 일으킨다. 스르렁 스르렁 쇠줄을 끌며 뱅뱅 제자리를 돌더니 돌연 날뛰기 시작한다. 뭔가 욕망하는 게 있는 건가. 소리로 나오지 못한 욕망이 기괴한 몸짓으로 표현된다. 펄쩍펄쩍 위아래로 흔드는 개의 머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 두 개로 보였다가 세 개로 보였다한다. 문득 언젠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뭘 상징하는 거 같아? 아빠가 머리가 세 개인 개의 그림을 보여주며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세 식구라고 대답했다. 몸은 하나고 머리는 셋,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지. 아빠가 물었다. 너는? 글쎄. 날뛰는 개의 머리가 영상으로 겹쳐 보이는 거 아니에요? 이어진 아빠의 설명은 싱거웠다. 지옥의 문을 지키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교훈이 될 만한 얘깃거리가 나오면 길게 얘기하던 습관대로 아빠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어쨌거나 세 개의 숫자에 가족의 의미로 자리매김하는 엄마나, 과거 현재 미래로 분류하는 아빠를 같은 차원으로 이해했던 기억이 난다.

- 엄마! 엄마 할비는 무지개다리 건너간 거야?

아이가 어른 말투를 흉내 내듯 묻는다. 응, 맞아. 대답은 했지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필시 엄마가 지어냈을 말이다. 아빠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는 노력의 일환. 왜냐면 우리의 뇌에는 기억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이 없다. 진실과 허구를 분별한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과거는 엄마의 생각만큼 점점 자라나는 게 아닐까 생각되자 걱정이 앞선다. 이제 그만 엄마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기억으로만 남아 있으면 안 되나, 그게 그리 어렵나. 그러게 착한 딸, 효심 깊은 딸이라는 말도 다 한낮 이데올로기 뿐인지도 모른다.

산책길에 과하게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걷던 아이가 웃는다. 놀라운 건 아이가 틱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편의 말이 맞는 건가. 이렇듯 무심한 듯 지나가는 건가. 뭉클한 느낌에 아이를 잡은 손에 가만히 힘을 준다. 

그래 행복이 별건가. 남편의 말마따나 가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행복하면 전파력이 생기는 거겠지. 주인아저씨의 말처럼 살다보면 무슨 일이든 생기게 마련이고, 그걸 또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사람인 것이고. 다만 어떤 일에는 시간이 쉬 지나가고 어떤 일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뿐이겠지. 인생에 실패란 없는 것이고, 다만 실패를 통과한 뒤 어디로 향하냐는 게 관건이니까. 이 부조리한 세상, 더 잘 사는 것보다 많이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한, 카뮈의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모든 기억의 세계는 축적된 경험의 농도로 만들어지니까.

- 나 힘 쎄지! 

아이가 맞잡은 손에 힘을 꾹 주며 말한다. 복잡한 내 맘을 읽을 리 없는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만 믿으라는 듯 으스대는 몸짓이라고. 아이와 똑같이 맞잡은 손에 힘을 가하자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여전히 틱이 없는 웃음이다.    

이전 09화 여름휴가_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