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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엄마 뱃속에 내가 있는 거야

포기하기 힘든 엄마 뱃속 이라는 공간

by 크레이지고구마


2014년 2월 4일 화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저녁을 먹고 잠시 쉬는 평범한 저녁.


봄이가 갑자기 그림을 내밀면서 말했다.

" 이건 엄마 뱃속에 내가 있는 거야~! "




봄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겐 아무렇지 않은 엄마 뱃속이라는 공간이

지금의 봄이에겐 너무나 요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뱃속이라는 공간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

엄마의 뱃속이라는 공간이

그렇게까지나 중요한 문제인가 생각해보았다.


내가 아닌

철저히 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하는데

나도 입양은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사실, 접근과 공감이 아직은 쉽지 않다.


봄이는 엄마 뱃속이라는 공간에 대해

한동안 내게 말하거나,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만 하면,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나오는 거야?

내가 들어갔다가 나오고 싶다~"

하며 봄이는 내 뱃속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겐 아무것도 아닌 그 사실이

봄이에겐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인정하기 힘든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인 것 같다.

자기 전에는 누워서,

"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엄마 뱃속에는 못 들어가고

맨날 엄마 배 위에 누워서 잘 수만 있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 뱃속에서 태어난 거 싫고,

우리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게 진짜 좋은데.


내가 뱃속에 있었던 엄마는 이름이 뭐야?

이름도 모르는데 뱃속에 있었어?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나는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아는 우리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왔으면 좋았겠다.


이지윤~! 오빠 너는 엄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나서 좋겠다.

나는 얼굴 모르는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너는 우리 엄마 뱃속에 있었잖아!


근데 엄마,

우리 맑은반 선생님이 엄청 힘들어해서

나는 선생님 말 잘 듣고 잘 도와주려고 하는데 좀 힘들어.

잘하고 싶은데 엄마한테도 선생님한테도 우리 모두는 왜 혼나는 거야?!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없나?

근데 왜 갑자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봄이는 혼자서 계속 말을 쏟아냈고

나는 봄이의 말을 들으며 혼자서 계속 웃었다.

"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었더라면 진짜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엄마 뱃속은 아기들이 있기엔 너무너무 춥대.

너도 만약 엄마 배 속에 있었으면 엄청 추웠을지도 몰라~!"

" 그래? 나는 추운 거 싫은데~.

그런데 엄마도 왜 갑자기 이런 얘기하는 거지?

엄마~ 잘 자~! 내 꿈에서 엄마랑 나랑 꼭 만나자~♡"

하더니 금방 잠들어버렸다ㅎㅎ

늘 반응과 수용이 빠른 봄이었어서

이젠 조금 지나갔으려나? 했는데...

여전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포기하기 힘든

'우리 엄마 뱃속'이라는 공간.

말이든 그림이든 봄이가 표현해 주는 것이 늘 고맙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잘 반응해주고 있는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봄이에게 상처가 덜 남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또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런 봄이의 말에,

봄이가 잠들면 나는 아직도 눈물 흐르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생각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내일은 또 그다음에는

어떤 말들을 쏟아낼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 말들로 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나를 안심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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