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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낳아주신 분은 내가 정말 싫었나 봐!

봄이가 지켜진 아이라는 것을 알기를

by 크레이지고구마
봄이가 5살 가을에 그렸던, 우리가족그림.


2013년 가을

봄이가 50개월이 지난,

5살 가을밤이었다.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엄마. 나를 낳아주신 분은 내가 정말 정말 싫었나봐!!!"
라고 말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요즘 자신의 입양에 대해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고 있던 터라
갑자기 내뱉은 봄이의 말은 내겐 꽤 충격이었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내 귀에 정확하게 들릴 정도로

쿵쾅쿵쾅 뛰었다.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봄아. 그렇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지윤이 오빠를 사랑하지?

오빠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고, 엄마랑 같이 살잖아.
그런데, 나를 낳아주신 분은 내가 얼마나 싫었으면,

나를 낳고 안 키웠겠어!
내가 정말 싫었나 봐!”

이렇게 말하면서 정말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내게도 꽤 충격을 가져다준 말이어서인지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짧지 않은 저 문장이

정확하게 기억난다.

평소에는 표정관리와 연기 잘하는 나였다고 생각했는데,
이 날은 깜깜해서 안 보일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으로

나도 그냥 소리 죽여 펑펑 울어버렸다.

“아니야, 봄아!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너를 낳아주신 분이 너를 정말 싫어했다면,

너를 낳지 않았을 거야.
너를 임신했을 때, 정말 많이 놀랐고 힘들었을 거야.
아기를 오랜 시간 뱃속에 품고 있는 건

정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거든.
그런데 네가 정말 싫었다면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내면서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라, 했겠어?
네가 정말 싫었다면 아마도 너는 못 태어났을 거야.
하지만 너를 정말 사랑해서 지켜냈고 낳은 거지.
너를 직접 키우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대.
그래서 너를 낳고 6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엄마와 아빠, 오빠가 있는 집으로

입양 보내야겠다고 결정한 거야.
이 모든 게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야.
너를 건강하게 낳아주셨고,

또 입양 보내기로 결정하셔서,

우리는 너를 만났고,
그래서 너는 엄마아빠 딸이 되었고,

지윤이 오빠 동생이 된 거야.
엄마는 너를 건강하고 예쁘게 낳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
너를 낳아주신 분이

너를 싫어해서 안 키우는 게 아니야.”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도 감출 수 없었다.
최대한 담담하고 차분한 척 연기하고자 했지만
내 연기는 실패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봄이가 '제발 나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했을 때보다

'낳아주신 분은 내가 정말 싫었나 봐'라는 이 말이

나는 더 마음이 아팠고, 쓰렸고, 슬펐다.

봄이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조금 더 울었다.
그리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울지 마. 내 이야기니까 나만 울 거야.

조금만 더 울게. 엄마가 안아줘서 좋아."

그렇게 봄이는 몇 분을 더 울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나는 너무 좋아!

사랑해, 내 엄마. 그리고 울지 마."
이러고는 몇 분 있다가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 작고 어린 내 딸이,

입양이 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데,
생모가 자기가 싫어서 안 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봄이가 깊이 잠든 밤
소리 내지 못하고 옆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슬픈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봄이가 자신의 마음들을
말로 표현해 주어 봄이의 생각과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어 다행인 밤이었다.


그리고 봄이가 했던 말 중에 이 말이 계속 맴돌았다.


"사랑해, 내 엄마."


내 엄마라는 말이 기분을 묘하게 들었다

그리고 좋았다.


내 엄마.

시간이 지나도

이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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