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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내가 너를 직접 낳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by 크레이지고구마
봄이와 함께 처음으로 광릉숲길 걷기를 했다. 우리는 정말 신나게 걷고 또 걸었다.


2013년 3월 21일 목


43개월의 봄이는 ‘입양’이라는 단어가 싫은 듯 하다.

그래서 굳이 일부러 이야기하진 않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입양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우리는 샤워를 할 때나,

잠자기 전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곧 잘하곤 했다.


누군가가 그 장면을 슬쩍 훔쳐본다면,

정말 쓸데없는 얘길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별다르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지만

나는 딸과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이 소소한 시간들이 좋았다.

우리의 소소한 이야기나누기 시간은

내게 딸이 생긴다면 그려왔던 장면 중의 하나였다.

오늘도 그런 평범한 시간이었고,

자려고 누워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엄마! 나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그래서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갑자기 그렇게 말하며 봄이는 멋쩍게 웃었다.

평소에 일상생활 이야기하듯 그냥 평범한 목소리였다.


나도 봄이가 내 뱃속에서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

그게 사실이라서 네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

사실이 아니지만 네게 그렇게 말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니까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거야.

너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낳기 힘든 상황에서도 너를 지켜낸 낳아준 분이 있단다.

그게... 내가 네게 말해줄 수 있는 사실이야.

너를 낳아주신 분이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너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너는 태어나지 못했을 거야.

그럼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너를 만나지 못해

무척 슬프겠지.

너를 낳아주신 분도,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봄이 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고,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사랑해.

네가 엄마 뱃속에 있지는 않았지만, 넌 내 딸이야!

봄이는 누구 딸이지?”


“엄마딸!”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목소리가 떨리지도 않았으며,

평소 일상적인 이야기 하듯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고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봄이가 잠이 들었고, 나는 눈물이 조금 났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낳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봄이가 입양 이슈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음과

봄이의 이런 반응과 질문에

평소와 같이 다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나 자신에게 놀랐고,

우리가 입양이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에 대한

감동과 감사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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