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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는 가족들과 이목구비 자체가 다르게 생겼어요.

이럴 땐 내가 낳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by 크레이지고구마
6살의 봄이는, 우리와 생김새와 유전자정보는 다르지만 많은 것이 닮았다.

2014년 6월 3일 화


어젯밤에 갑자기 고열이 올랐던 봄이와

기침을 조금 하는 지윤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갔다.


다음 진료를 기다리며

대기 중인 우리 셋을 보던 간호사 두 명이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지윤이랑 봄이는 남매인데 어떻게 하나도 안 닮았어요?"

순간! 나와 지윤이는 멋쩍게 웃었고,

봄이는 얼굴을 내게 파묻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많이 당황했지만 담담한 척하며 말했다.


“아, 그런가요? 사람들은 봄이가 저를 닮았다던데요,

분위기가 비슷하다고들 했는데, 다르게 보이시나 봐요.”

“지윤이와 엄마아빠는 비슷하게 닮았는데,

봄이는 엄마아빠오빠와 이목구비 자체가 정말 다르게 생겼어요.”

라고 말하자마자 우리는 더 당황했다.


진료대기실과 안내데스크 사이의 공기가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모르게 어색해져 버렸다.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건지

간호사 한 명이

자기도 오빠와 너무 다르게 생겨서 남들이 보면

남남이라고 했었다며 멋쩍게 웃었고,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듯했다.


지윤이와 봄이가 닮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한 간호사는 지윤이가 아빠를 닮았고,

나머지 한 명은 지윤이가 나를 닮았다고 했다.


봄이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지윤이나 아빠와는 전혀 닮지 않았고,

그나마 나랑 닮았다는 느낌은 조금 있지만

이목구비가 너무나 다르게 생겼다며

신기해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봄이는 할머니를 닮았나?

할아버지를 닮았나?

고모를 닮았나?”

하며 있지도 않은 온갖 친척이 다 거론되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봄이는 나와 닮았다는 말을 제일 좋아하는데

갑자기 우리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말에

봄이의 기분과 마음은 과연 어떨까...


진료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우리는 입양가족이라 봄이와 외모가 닮지 않았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아무 말 않고 웃기만 할 것인가!


봄이를 입양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고.

그러면서 정말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그럼 나는 또 괜찮다고 말하며 웃겠지.

리고 봄이의 입양사실은 만천하에 다 공개되겠지.


이런 과정이 그려지면서

봄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과 걱정이 앞섰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봄이의 입양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봄이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봄이의 동의도 없었고,

봄이의 생각도 정확하게 몰라서..

봄이의 입양사실을 주변인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기엔 봄이는 너무 어리지만,

이것은 지극히 봄이의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봄이의 기분과 결정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의 의견을 따라주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판단과 결정은 이랬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본의 아니게 조금 다쳐버린 봄이의 마음이 내겐 중요하다.

속상해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어색하게 웃고 있는 봄이를 보며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가족이 된 것뿐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겐 좀 특별하게 보이기도 해.

그리고 봄이는 엄마뱃속에서 나오지 않았으니까

엄마아빠오빠와 하나도 안 닮을 수도 있는 거야.

봄이를 낳아준 분과 엄마는 전혀 다르게 생겼을 테니까

봄이가 엄마를 안 닮을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는데도

엄마아빠와 하나도 안 닮은 아이도 있고,

입양했는데도 엄마아빠와 너무 닮은 아이도 있어.

닮았든 안 닮았든 우리가 가족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거야.

세상 사람들 모두가 봄이와 엄마가 얼굴이 안 닮았다고 해도

너는 내 딸이고, 우리는 가족이야.

그러니 닮지 않았다는 말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


나는

다친 봄이의 마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봄이에게 풀어놓았을 때

봄이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디테일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나는, 많이 성장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오늘같이 이런 일이 있을 때엔

내가 낳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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