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엄마 뱃속에 있었다는 생각을 계속 까먹는다?
2014년 8월 21일 목 저녁
"엄마, 아빠는 누구 뱃속에 있었어?"
"아빠는 성남할머니 뱃속에 있었어. “
갑자기 시작된 질문.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그것, 엄마 뱃속.
아니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빠! 아빠는 성남할머니 뱃속에 있었어?"
"응."
평소에 아빠에겐 입양에 관련된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데
갑자기 아빠에게도 물었다.
아빠는 봄이가 입양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오빠는 누구 뱃속에 있었는지 알아?
엄마 뱃속에 있었어."
"응, 그래. 맞아."
“근데 엄마, 나는 엄마 뱃속에 있었지?”
다른 질문들과 달리
이 질문을 할 때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봄이는 다른 사람 뱃속에 있었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절대 당황하지 않은 듯 연기했다.
동시에 내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난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아, 맞다! 내가 또 생각 까먹었다.
나는 다른 엄마 뱃속에 있었던 거 알고 있었는데,
깜빡 생각 까먹었네ㅎㅎ
근데 오빠는 엄마 뱃속에 있었던 거 맞지?"
하며 얘기하는 내내 멋쩍게 웃었다.
봄이의 멋쩍은 웃음이 나는 슬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꾹 참았다.
나의 연기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래, 맞아. 봄이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오빠는 엄마뱃속에 있었고
봄이는 다른 엄마 뱃속에 있었어“
연기는 늘었지만 나는 슬펐고
눈물도 늘었는데 울 수가 없었다.
나는 입양이야기를 할 때는
밝은 엄마여야 했다.
그래야 봄이가 입양에 대해 슬프게 느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봄이가 입양을 슬프게 느끼지 않도록 바랐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2014년 8월 22일 금 저녁.
"엄마, 내가 어제 생각 까먹었던 거 기억나?"
봄이는 정말 갑자기 질문을 한다.
나는 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두려우면서도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뭐? 우리 봄이 무슨 생각을 또 까먹었어?"
"에휴! 내가 어제 그랬잖아!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다고!!“
"아~ 그거~! 근데 왜?"
"그냥 오빠는 엄마 뱃속에 있었고,
나는 엄마 뱃속에 없었던 거 아는데,
자꾸 엄마 뱃속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엄마 뱃속에 있었다는 생각 까먹는다?!
쫌 이상하지?"
이러면서 다시 멋쩍게 웃는다.
봄이의 멋쩍은 웃음은
오늘도 슬프다.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아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다행히
내 눈물을 감출 수 있었다.
"봄아, 그런 거 까먹어도 괜찮아~!
봄이가 누구 뱃속에 있었는지는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아무 상관없어!
그런 걸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엄마아빠오빠처럼 누구 뱃속에 있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봄이는 엄마아빠딸이고, 오빠 동생이잖아.
그런 거 중요하지 않으니까 봄이한테 얘기하는 거야.
그러니까 봄이가 엄마뱃속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이 나기도 하고,
까먹기도 해도 괜찮은 거야.
엄마한테는 봄이가 다른 사람 뱃속에 있었을 때,
봄이를 낳아주신 분이 봄이를 잘 지켜냈고,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태어났다는 게 중요한 거야.
너는 내 딸이니까.”
내 대답은 또 길었다.
그런데 봄이는 잘 들어주었다.
"알았어, 엄마.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좋아!
진짜 엄마를 사랑해~♡ 내 엄마~♡"
'내 엄마' 라는 말은,
늘 나를 감동받게 하고
감정인식과 표현에 인색한 나를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봄이 보는데서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또 잘 참아냈다.
그리곤, 봄이가 잠들고 난 후
혼자서 조용히 울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내 딸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실인 뿌리와 탄생!
한 번씩 문득문득 생각나면 이야기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봄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최선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그 순간순간 사랑을 담은 눈빛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봄이는,
나의 솔직하지만 허접한 대답에
늘 사랑한다는 말로 최고의 피드백을 주는
고맙고 소중한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