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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나서 슬픈 게 없어지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그것뿐이었다

by 크레이지고구마
원인불명의 봉와직염으로 입원치료를 하는 중에도, 정말 밝고 씩씩했던 봄이ㅋㅋㅋㅋ



2015년 2월 5일 목


평범한 저녁이었다.

지윤이와 봄이는 나를 사이에 두고 눕거나 엎드려서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한 목소리로 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어린이집에서 기도했어.

엄마 죽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엄마, 아빠, 오빠가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리고 엄마가 하느님한테 기도를 조금 열심히 해보면 안 될까?

나도 기도하고 있는데, 엄마도 같이 더 열심히 하면,

내가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느님은 우릴 사랑하시니까

우리 둘이서 열심히 기도하면 들어주시지 않을까?”


나는 대답을 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봄아~! 엄마가 기도를 열심히 할 수는 있어.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봄이가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어.”


“그래? 왜 나는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난 거야.

나는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나서 속상하고 슬퍼!

나도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고 싶은데,

오빠만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잖아!

나도... 나도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엄마는 왜 나를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나게 한 거야!

나도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왜 나만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나는 거냐고!”


......


봄이의 아무렇지 않은 듯하면서도

숨겨진 분노가 느껴지는 말들을 듣고 있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다.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봄아~. 봄이가 속상하고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알겠는데,

네가 다시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거야.

그리고 엄마 뱃속에서는 아기가 살기 힘들다고 이야기했잖아.

아마 봄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더라면,

너무너무 춥고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건강하지 않게 태어났을 수도 있어.

봄이가 태어난 것도, 엄마 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너를 지켜내어 낳아주신 분이 있기 때문이야.

봄이가 누구 뱃속에서 태어났느냐가 봄이에게는

슬플 수도 있지만,

엄마와 아빠, 오빠는

엄마 뱃속으로 낳은 것과

다른 사람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전혀 다르게 생각되지 않아.

네가 내 딸이고, 오빠 동생이고,

우리가 너를 아주 많이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변하지 않아.”


그리고 한참동안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득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 나도 다 알아.

엄마, 아빠, 오빠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것도 알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나서 슬픈 게 없어지지 않아.

그래서 너무 속상해.”


“우리 봄이가,

엄마 뱃속에서 안 태어난 게 너무 속상하구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봄이를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그것뿐이었다.

그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우리의 대화는

늘 그렇듯이 이렇게 덤덤한 말투로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끝이 났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지윤이도,

슬프고 속상한 감정이 처리가 안 되는 봄이도,

그 슬픈 감정을 무덤덤하게 말로 표현하는 봄이를 지켜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는 나도...

슬펐다.


2년 전에도 했던 이야기와 질문들이다.


한동안 좀 잠잠하다 싶었는데,

갑작스레 시작된 이야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이야기를 해도...

사랑받고 있음은 알지만,

그럼에도 슬픈 감정은 없어지지 않아 속상하다는 봄이...

봄이가 자라는 만큼

슬픈 감정도 구체화되어 처리하기가 힘든 것 같다.


입양원으로 전화해서 원장수녀님과의 상담을 요청했고,

전화로 간단히 이야기했다.

수녀님께서는......


봄이는 아주 기민하고 예민하고

자기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을 잘하는 아이인데,

또래 아이들에 비해 조금 더 빠르게 '입양'에 대한

더 구체적인 개념이 생기고,

슬픈 감정도 더 구체적이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전화상으로 엄마인 내게 이야기를 하고,

또 그걸 내가 봄이에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이제는 수녀님이 나서서

봄이에게 입양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게 더 좋을 듯 하니,

일요일에 입양원에 가서 봄이와 원장수녀님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2년 전보다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 버린 봄이.


2년 전과 질문은 같지만,

그때와 같은 대답도, 나의 그 어떤 대답도

봄이가 슬픈 감정을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질 않으니

순간 꽤 막막하고 당황스러웠다.

그 어떤 말에도,

확신에도,

슬픈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우린 또 조금 성장하지만,

성장 이상으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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