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 같아.
"내 마음속에 검정 마음이 있는데
그 작은 검정마음이 없어지지가 않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없어져서 슬퍼."
봄이는 지금 '슬픔'과 마주하고 있다.
단순히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속상하고 슬픈 것만이 아닌
봄이 자신도 뭔가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슬픔을, 봄이는 '검정 마음'이라고 하였다.
그 검정마음이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봄이는
막막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검정 마음이 가슴속에 있는 것이 혼란스럽고
마치 퍼즐을 맞추는데,
퍼즐 한 조각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봄이는 지금 자기 자신을
한 조각이 없어 완성되지 않은 퍼즐 같다고 하였다.
자신의 입양에 대한 이슈를 수용하는 과정 중에
혼란스러움이 오고야 말았다.
그 잃어버린 퍼즐을
찾거나
만들거나
퍼즐 한 조각이 없는 채 완성하거나,
어떻게 하든 봄이 스스로 해야만 한다.
우리는 성가정입양원으로 원장 수녀님을 만나러 갔다.
봄이는 왜 생모가 자신을 낳고 키우지 않았는지
왜 자신은 생모와 살지 못하고 입양되었는지
친구들은 안 그런데 왜 자신만 입양인지
입양되어서 엄마 아빠가 생겼고,
그게 좋은데 왜 자신은 슬픈 느낌이 있고
그 검정마음은 없어지지 않는지
검정마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나에게 했던 질문들과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수녀님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리고 따스한 눈빛과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봄아. 너는 아직 어린데도
입양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이렇게 자세하게 말로 표현하다니 놀라워.
네 생각을 알 수 있어서 기쁘고,
너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수녀님은 참 좋아."
라는 말을 시작으로 봄이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해 주셨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결혼과 임신 후 출산으로
아기와 가족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도 있고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낳아서 가족이 되기도 해.
봄이의 생모는 봄이가 싫어서가 아니라
아기를 키울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로 키울 상황이 안되었대.
너를 낳고 정말 키우고 싶어 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너를 좋은 가정에 입양 보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부탁했지.
왜 직접 키울 수 없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어른들 중에는 결혼을 하고도 직접 키울 수 없어서
보육원이라는 곳에 키워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어.
그리고, 입양은
아기에게 좋은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주지만,
너의 입양은 너의 선택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힘들고 슬프고 화가 날 수 있어.
슬프고 화나는 마음은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 일부러 없애고 지워버리지 않아도 괜찮아.
살다 보면 슬프고 화나고 짜증 나는 그런 감정들은
입양이 아니더라도 많이 있잖아.
봄이도 친구나 다른 일 때문에 짜증 나고 화가 날 때가 있지?
그럴 때마다 그 검정마음을 없애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검정 마음이 사라지거나 생각나지 않지?
그렇게 검정마음은 마음속에서 조금씩 흐려지기도 하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더 진한 검은색이 되어 나타나기도 해.
그걸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검정마음이 가슴속에 있어도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해 보자.
입양이 아니더라도,
봄이 너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검정마음은 언제나 조금씩 있어.
삶에서 슬픔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게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너무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내 가슴속에 검정마음 너가 있구나.
조금 있다가 흐려지거나 사라지면 좋겠다.
생각하고 봄이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가족들과도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다 보면
검정마음이 있는지 사라졌는지 생각이 잘 안 날 거야.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 같은 퍼즐조각은
지금 당장은 찾기 힘들 수도 있어.
퍼즐 한 조각이 없다고 해서 봄이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
그러니 그 퍼즐 한 조각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지내보자.
그러다 보면 퍼즐을 찾을 수도 있고
그 퍼즐 없이도 괜찮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봄이가 입양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궁금하거나
입양 때문에 힘들거나
꼭 입양이 아니더라도 다른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지금처럼 나(원장수녀님)에게 와도 좋아.
나는 봄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
너는 어땠니?"
봄이는
너는 어땠니?라는 수녀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환하게 미소 짓지도 않았고
긍정적인 반응이나 액션도 없었다.
그저 차분한 눈빛으로
수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경직된 듯 보이는 얼굴 근육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듯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얼굴로
살짝, 한 번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나는 안다.
봄이가 수녀님의 이야기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를.
봄이가 원했던 답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의문에 대한 해소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서 생각하고 슬픔에 빠져있었을 때,
슬픔은 봄이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있고
봄이의 그 슬픔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믿음이 가는 누군가가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을 때 주는 그 말의 힘을,
봄이는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편안해졌다.
입양원에서 나올 때
봄이의 가벼운 발걸음과 편안한 얼굴은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수녀님과의 대화 후,
봄이는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과
가슴속의 검정 마음에 대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그 한 번의 대화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괜찮아진 것은 아니겠지만
봄이에게 큰 위안과 안정을 가져다준 것은 확실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나 알게 되었지만
봄이는 정말
민감하며
솔직하고
용기 있는 아이였고,
그에 비해
나는 많이 부족한 엄마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애쓰며 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