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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바로 나야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엄마와 그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아 슬픈 딸

by 크레이지고구마
어린이집에서 수업 후 그린 가족그림. 봄이의 가족그림은 봄이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이다.


2015년 2월 24일 화


봄이가 그린 가족 그림...


봄이는 "언제 내가 이 그림을 그렸지?"

라며 기억 못 하는 척 하지만,

나도 봄이도 이 그림을 언제쯤 그렸는지,

그 시기가 최근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림을 그린 후 가위로 잘라서 붙였는데

가위로 자르다가 엄마와 오빠는 모르고 팔을 잘라버렸어.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진짜 실수였어!”


“그럼 잘린 팔 부분을 다시 잘라서 붙여주면 되잖아!”

웃으면서 실수라고 말하는 봄이에게

나는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 붙이고 종이 다 버리고 나서

엄마와 오빠는 팔이 없는 걸 발견했어ㅋㅋㅋ

미안해ㅎㅎㅎ”


“그렇다면 다시 그려서 붙여줄 수도 있었잖아~?!”


“아, 진짜 엄청 투덜거리네!

7살 딸이 그럴 수도 있지 엄마가 그것도 이해 못 해?!”

봄이가 웃으며 투덜거렸다.


참 귀여운 친구 같은 딸, 봄이다!


그렇게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봄이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바로 나야!”


훅 들어온 봄이의 툭 던지는 듯 한 말이었는데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가만히 봄이의 말들을 듣기만 했다.


모든 질문에 전부 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때론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땐 몰랐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우리 가족 네 명이 있는데,

엄마 배 속에 아기 한 명이 또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저 아기는 누구일까? 했었는데

봄이는 자기 자신을 제일 크고 예쁘게 그려놓고선

내 뱃속에 아기를 그리고

그 아기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슬픈 봄이는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맞닥뜨리며 수용하고 이겨내고 있었다.


봄이의 슬프지만 처리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을

엄마인 나도 알고 있다.

봄이에게 직접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잠이 든 봄이 옆에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봄이 네가 나에게 말해주

내가 너의 마음을 알게 되어 너무 고마워.

너의 그 슬픈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고,

그 슬픈 마음이 작아지지 않아

속상해하는 너를 지켜보고 있는 게

나는 아직도 아프고 힘들지만

나는 엄마니까 절대 울지 않고 힘든 내색하지 않고

꿋꿋하게 네 뒤에서 지켜보고, 옆에서 손 잡아줄게.

사랑하는 내 딸~ 힘내자~!!!”


봄이가 그린 이 그림은 참 재미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에 남아서 아프다.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엄마와

그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아 슬픈 딸이라니...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그랬듯이 차분했고 평범했다.


그나마 봄이가 그린 가족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이 놓였던 것은

봄이가 자기 자신을 크고 예쁘게 그린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참 기뻤고 감사했었다.

그날 밤에도 나는 그랬었다.


지금까지는 봄이를 직접 낳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둘째 난임에 대한 나의 상실과 슬픔을

마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봄이가 자신의 입양을 마주하며

용감하게 부딪쳐 나가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상실과 슬픔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겁하게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어서 외면하고 있었다.


봄이는 성장하고 있었는데

나는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양이 한 아이의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지만

입양은 봄이의 세상뿐 아니라 나의 세상도 바꿔놓았고

그땐 몰랐었는데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내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는데

이것을 깨닫는데 10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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